예상과 달리 일본이 7일 내놓은 시행세칙에는 기존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외에 개별허가품목이 담겨 있지 않다. 이를 놓고 일본이 수위조절에 나섰다는 시각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엇갈린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에 따라 원칙적으로 모든 전략물자에 대해 개별허가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특히 일본은 군사전용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판단하는 경우 비(非)전략물자에 대해서도 수출통제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그룹 A에서 B로 강등됐는데 개별허가품목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너무 이르다”며 “불확실성을 주면서 도대체 뭐가 들어가는지 우리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연막작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오는 28일부터는 한국이 B그룹으로 분류되면서 화이트리스트 국가로서 누리던 혜택은 사라진다. 기존 화이트리스트 국가가 포함된 A그룹은 전략물자에 대해 포괄허가(유효기간 3년·제출서류 간소화·빠른 심사)를 받는다. 반면 B그룹의 경우 원칙적으로 건별로 심사를 받는 개별허가(유효기간 6개월·제출서류 9종으로 확대·심사기간 최대 90일)를 받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비전략물자라 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무기개발 등에 전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역시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별허가를 받게 되면 경제산업성이 90일 정도 걸리는 수출신청 심사 과정에서 심사를 고의로 지연시킬 우려가 있고 막판에 제출서류 보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출을 막을 수도 있다.
일본은 이번 조치에서 개별허가를 강제하는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았다. 당초 업계는 1,100여개 전략물자 가운데 어떤 품목을 개별허가로 돌릴지 구체적으로 규정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한국 기업의 추가 피해 규모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를 발표하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서는 일본이 향후 어떤 품목을 지정할지 모르니 닥치는 대로 물량 확보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토로가 나온다.
일본이 품목을 지정하기 전까지 우리 기업들이 추가 재고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물자에 한해 일본의 우수기업 격인 ‘내부자율준수규정(CP)’ 기업이 수출하는 품목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수출할 수는 있다. 하지만 CP 기업과 거래선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이마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야 CP 인증을 보유한 기업들과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CP 기업 명단을 공개해놓았다고 하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이 명단만 보고 당장 거래가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본이 개별허가 강제품목을 분류하지 않은 것을 두고 불확실성을 높이는 식으로 한국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통상 전문가는 “결국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 중요해진 셈”이라며 “외교적 노력에 따라 개별허가품목 지정이 추가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이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일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개별허가품목을 지정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 “갈등 확산을 방지하면서 우리 정부에 공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의 이 같은 조치에 맞대응하는 데 속도를 낼 예정이다. 정부는 8일 열리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서 일본을 우리 측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안건을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을 수출우대국가 지역인 ‘가’ 지역에서 ‘다’ 지역으로 재분류해 일본이 그랬듯 포괄허가 혜택을 없애고 개별허가를 받도록 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김우보·정순구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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