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도널드 트럼프의 ‘자기 만족적 국가’에서 그 일원이 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사임한다.’
해외 주재 미국 공관에서 10년간 일해온 한 한국계 미국 외교관이 양심선언과 함께 사표를 던졌다. 인종차별과 반(反)이민 기조의 트럼프 행정부에서 자유·공정·관용이라는 미국의 가치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는 자책과 비판의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의 이름을 ‘척 박’이라고 밝힌 이 외교관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사직서 양식의 기고문을 통해 “더 이상 양심에 침묵할 수 없다”며 이날부터 미국 외교관직을 내놓겠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을 ‘한국에서 온 이민자의 자녀’이며 26세 때부터 외교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고 설명하면서 미국 외교관이 된 이유를 “부모님을 환영하고 나와 형제자매가 번성할 수 있도록 해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자유와 공정·관용이라는 미국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지금까지 세 차례 이상 해외에 나간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척 박은 트럼프가 이민자를 ‘거지소굴(shithole)’ 국가에서 왔다고 깎아내리고, 국경에서 이민자 아동을 부모와 격리하고 그들을 구금시설에 가둘 뿐이었다”며 “(나는) 대통령이 이민자들의 여행을 막으면 한숨짓고 수용소 아이들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면서 명령을 이행했다”고 자책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미국의 가치와 트럼프 행정부가 보이는 모순적 상황을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려고 애쓰며 방어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털어놓았다.
그가 반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훈계뿐이었다. 그는 “2017년 내가 다수 이슬람 국가의 여행자 금지에 반대한다는 서명운동에 동참했을 때 두 명의 고위 외교관이 내 경력을 위태롭게 한다며 경고했다”며 덧붙였다.
갈수록 암울해지는 현실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척 박은 “이 결정을 내리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부끄럽다”며 “직업상 특권이 양심을 침묵하게 했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다”며 기고문을 마쳤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