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의 시력이 없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연주하는 버릇이 있어요. 왼손을 보면 오른손이 안 보이고 오른손을 보면 왼손이 안 보이는 상황이라 왼손은 보면서 치고 오른손은 감으로 칩니다. 연습할 때도 눈을 감고 치고요. 맨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부터 악보를 외우는 습관을 들였어요. 그렇게 어찌어찌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앳된 얼굴의 2003년생 피아니스트 김두민(16)은 최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선천성 백내장으로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담담하게 설명했다. 복잡한 악보와 피아노의 모든 건반을 동시에 봐야 하는 피아니스트에게 한쪽 눈의 시력이 없는 것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향한 그의 열정과 노력에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김두민의 데뷔 앨범 ‘멘델스존 피아노 작품집’은 워너클래식 ‘EMI클래식’ 레이블의 인터내셔널 음반으로 발매된다. 이 레이블을 통해 한국인 아티스트가 전 세계로 앨범을 발매한 것은 김두민이 네 번째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음반 발매는 유명 콩쿠르 우승이나 유명 아티스트의 추천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김두민은 2017년 프랑스 최고 음악원 중 하나인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무지크 드 파리’(이하 ‘에콜 노르말’)에서 수학하던 중 소문을 듣고 찾아온 워너클래식 사장과 아티스트담당 부사장의 오디션을 보게 됐고 곧바로 워너클래식과 음반발매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 발매된 앨범은 김두민 만 14세이던 당시에 녹음한 것이다. 그는 앨범에 대해 “어린 에너지와 순수함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두민은 이미 2016년 18세 이상만 입학 허가를 내주는 ‘에콜 노르말’의 오랜 학칙을 깨고 13살의 나이에 전액 장학금이라는 조건으로 입학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에콜 노르말’은 1919년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최고의 명문 사립 음악원이다. 학사과정을 전체 수석으로 마친 후 그는 현재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청주에서 태어난 김두민은 7살에 처음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은 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그는 SBS TV ‘영재발굴단’에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두민은 “제가 피아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저를 선택한 느낌이 들었다”며 “어렸을 때 눈으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도 음악을 하면서 풀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청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공연을 본 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엄마는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저 정도로 잘 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연에 데려가셨는데 백건우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제대로 피아노에 빠졌다”며 “저런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지금도 그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어떤 음악가로 성장할까. 김두민은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진짜 예술가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소리로 예술을 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20대가 되면 지휘 공부를 시작해 30~40대가 되면 지휘도 하고 작곡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는 9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한국에서 첫 번째 리사이틀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에서 데뷔 앨범에 담긴 멘델스존 작품과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미리 기념하는 의미로 베토벤의 초기 피아노 소나타 작품들 (피아노 소나타 1번과 12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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