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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이찬희 대한변협회장 "기업 비밀 캐내려 변호사 압수수색…檢 수사행태 근절돼야"

'변호사 비밀유지권' 명문화로 사건 외 기업기밀 누출 막아야

대법 강제징용 판결 따른 日 보복은 정치권서 풀어야 할 문제

'檢 개혁' 의견안 11월 제시…칼자루 쥔 조국 기대 반 우려 반

판검사 전관예우는 법률상 못 막아 경험 활용할 방안 모색을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도움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것입니다. 수사의 필요성이 그 위에 있을 수 없어요. 특히 법무팀부터 법무법인(로펌)까지 압수수색을 하게 되면 가장 타격을 크게 입는 것이 기업의 기밀입니다.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명문화한 법을 입법하든, 검찰의 침해 금지 약속을 받아내든 반드시 임기 내에 해결할 생각입니다.”

최근 법조계는 사법농단 의혹과 검찰개혁안 논란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법조인들까지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사이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면서 법치주의의 존립마저 흔들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전 기반 없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만 도입된 변호사업계 역시 새 체제에 적응하려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찬희(54·사법연수원 30기·사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최악으로 치달은 법조계의 위기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법원·검찰에 대한 신뢰가 모두 무너진 상황에서 변협이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가 많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실려 있었다. 취임한 지 반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회장의 발길은 변호사업계를 넘어서 벼랑 끝에 선 법조계 곳곳에 닿고 있다. /대담=한영일 사회부장 hanul@sedaily.com





이 회장은 무엇보다 전국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앞으로의 최대 중점 사업으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보호를 들었다. 특히 최근같이 검찰의 기업 표적 수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업 법무팀, 로펌, 개인변호사 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하는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이 회장은 이를 막기 위해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변호사 비밀유지권 도입 정책토론회’를 열고 자체적으로 마련한 변호사법 개정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법무 업무를 하는 변호사의 컴퓨터나 휴대폰을 압수수색하면 온갖 자료가 다 나오는데 중요 자료가 안 나오면 검찰이 별건수사로 압박하기도 한다”며 “헌법 가치를 훼손할 정도의 사건 수사라면 용인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기업 수사에서 이 같은 행태가 많이 나타나는데 기업과 이들을 담당하는 개인 변호사들은 강제수사를 받으면 버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이에 따른 일본 정부의 통상 보복에 대해서도 법률가로서 어떤 방식으로 힘을 보태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법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면서도 “결국 문제는 정치권이 풀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변협과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인권을 보장하자는 목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관해 이미 공동 선언을 했는데 일본 쪽에서 입장을 바꿨다”며 “일본에서도 강제징용과 관련해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남았다는 판결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제징용 판결 문제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개입 의혹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사법개혁에 대해 정치권이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입장도 거듭 강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사법개혁안이 8개월째 정치권의 외면을 받자 지난달 ‘사법행정자문회의 설치’라는 고육책을 꺼낸 바 있다. 이 회장은 올해 4월15일 김 대법원장과 직접 만나 사법개혁 협조를 요청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전과 달리 사법부는 변협과 소통을 늘리고 있다”며 “국회가 문제인데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다 보니 김 대법원장도 다른 방식으로 의지를 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인 2015년 변호사들의 형사 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에 관해서는 “법적 판단이 아닌 목적을 가진 판결이었다는 의심이 든다”며 이를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검찰개혁과 관련해서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 11~12월 변협 차원의 통일된 의견을 제시한다는 계획을 소개했다. 지난달 9일에는 검찰·경찰 관계자는 물론 변호사단체들과 학계 전문가들까지 모아 검경 수사권 조정안 문제를 논의하는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17년 5월 변협 전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는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 각각 60%, 80% 달했지만 2년 사이 사정이 많이 바뀌어 의견 수렴을 다시 해야 한다”며 “공수처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의 특별감찰관 제도와 뭐가 다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과 관련, 9일 지명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내비쳤다. 이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검증된 최측근으로서 검찰개혁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중용했다고 본다”며 “수사권 조정, 로스쿨 개혁 등 각종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제도가 마련되도록 법무부와 적절한 견제·협력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 검찰이 내부 인사와 관련해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데 이제는 국민을 위해 검찰 조직의 안정이 필요하다”며 “목표가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원하는 결과를 오히려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취임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당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으로 손발을 맞춰본 경험을 언급하며 소통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윤 총장은 지난달 29일 이 회장을 직접 방문해 “수사와 재판과정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윤 총장은 1년간의 변호사 경험이 있어 다른 검사장들과 달리 변호사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게 높았다”고 평했다. 그는 “윤 총장이 지검장일 당시 영장 심사 결과 통지, 검찰 조사 때 변호사 조력 강화 등 변호사들의 건의에 대해 신속하고 확실한 조치를 내렸다”며 “개혁 성향의 추진력 있는 총장이므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판검사 최고위직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헌법상 직업의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법률만으로는 그들의 개업을 마냥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사법 현장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단면을 겪은 법조 최고위직들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회장은 “변협이 최고위직 변호사 등록을 최대한 받지 않으려는 편이지만 그들이 불명예 때문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협회의 이 같은 조치는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라며 “다행히 최근에는 전직 대법관·헌법재판관·검찰총장 등이 학계나 다른 분야로 가는 바람에 한시름 놓고 있지만 연금 이상으로 이들을 예우할 방안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정 부처 경험이 전부인 행정부 출신들과 달리 사법부 고위직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갈등들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이제 변호사를 개업한다고 경제적으로 보상받기도 쉽지 않은 만큼 그들의 경력을 국가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당시 최대 공약이었던 ‘변호사 직역 수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단호한 주장을 펼쳤다. 로스쿨 체제가 자리 잡은 만큼 법률서비스 전문가들의 영역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회장은 “사법고시를 통해 소수의 엘리트로 운영하는 시스템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전체주의”라며 “과거 법률가가 소수였기 때문에 소송 업무에만 전념했던 것이지 다른 법률 업무를 할 수 없어서 안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로스쿨 도입은 갑오개혁 이후 사법 시스템에서는 최대 변화인데 법조계가 광복 이후 일제 잔재를 가장 청산하지 못했다”며 “세무사·노무사·법무사 등 변호사를 보완하기 위해 탄생한 직종들이 변호사의 진입을 막는 특혜 법안을 만들면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전공을 활용해야 한다’는 로스쿨의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로스쿨 도입으로 제도를 바꿨으면 모든 법률서비스를 변호사가 할 수 있도록 원칙도 그에 맞춰 바꾸는 게 맞다”며 “인위적으로 직역을 통합할 필요 없이 전문성과 가격에 맞춰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법률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법조계에 유례없이 다사다난한 시기인 만큼 주말에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이 회장은 그나마 회원들의 단일한 지지가 외부 문제 대응에 힘이 된다고 자부했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단독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협회장이다. 이 회장은 “후보 경쟁이 붙으면 어쩔 수 없이 변호사 세력이 갈라져 갈등을 겪게 되는데 나는 그런 게 없다”며 “보수·진보, 대형·소형 로펌 등 어디와도 껄끄럽지 않으니 입장을 정하는 게 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정리=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65년 충남 천안 △1984년 용문고 △1988년 연세대 법학과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1999년 사법연수원 30기 △2005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재무이사 △2008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2010년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 △2010년 스폰서검사 특검 특별수사관 △2011년 연세대 법무대학원 졸업(법학 박사) △2011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2011년 경원대 법대 겸임교수 △2017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19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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