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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의 ‘불통’ 무역전쟁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대두 등 中에 수입요구 리스트

내년 대선 승리 위한 전략일뿐

관세가 사양산업 살리진 못해

기존 교역시스템 파괴 시간문제

파리드 자카리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적인 무역전쟁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을 벌였다. 사태의 추이를 따라가기에 앞서 한 가지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이 있다. 관세는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자유시장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그저 실용적인 관찰을 하고자 할 뿐이다. 최근 수십년 동안 미국에서도 국내 사양산업을 도우려는 숱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관세가 사양산업의 진행방향을 영구히 바꿔놓은 경우를 단 한 건도 본 적이 없다.

가장 최근의 예는 트럼프의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물린 타이어 관세다. 2019년 국내 경쟁업체들로부터 중국산 타이어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수입된다는 불만을 접수한 오바마 행정부는 해당 수입품에 35%의 무거운 관세를 물렸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피터슨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이로 인해 미국 타이어 업계는 1,200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은 11억달러를 추가로 부담해야 했고 소매 부문에서 3,7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타이어 업계의 일자리 한 개당 거의 100만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게다가 중국이 미국 양계 생산업체들에 보복관세를 물리면서 10억달러의 판매 손실이 발생했다.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2008년 6만명이었던 타이어 산업 근로자 수는 2017년에 이르러 5만5,000명으로 감소했다.

트럼프의 최고위 통상 협상가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일본의 값싼 수입품이 미국 경제를 쑥밭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던 1980년대에 협상 기술을 익힌 인물이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무역대표부 부대표였던 그는 자동차·철강 같은 일본산 수입품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무역장벽을 총동원했다.

다트머스대 경제학 교수인 더그 어윈은 외교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의회예산국(CBO)이 내놓은 두 건의 포괄적인 보고서는 라이트하이저의 조치들이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CBO의 결론은 간단하다. ‘무역 규제는 국내 해당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1차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트럼프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살펴보자. 관세를 지지하는 미국제조업자연합은 트럼프의 조치로 1만2,700개의 일자리를 지켜냈거나 추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터슨인스티튜트는 철강 가격 인상으로 미국 기업들이 연간 115억달러의 추가 경비를 부담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 분야의 일자리 한 개를 건지기 위해 100만달러를 지불한 셈이다. 미국 알루미늄 생산은 관세조치로 다소 증가했으나 여전히 2015년 수준을 밑돌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위치한 미국은 많은 산업체가 상품과 용역을 생산하는 허브로 활용된다. 하지만 미국이 고율 관세의 요새로 변한다면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심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초당파적 단체인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3월 공개한 자료에서 트럼프가 대공황 초기인 1930년대의 스무트홀리관세법과 1971년 단기 닉슨 쇼크 이래 가장 대대적인 보호주의로의 회귀를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NBER 소속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트럼프의 관세로 미국인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연 688억달러의 엄청난 추가 부담을 감수한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미국의 관세는 선진 7개국 그룹인 G7 가운데 가장 높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국가들 역시 보호주의로 돌아설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인 경험으로 볼 때 일단 부과된 관세는 폐지하기 힘들다. 이로 인해 이익을 보는 국내 산업체들이 관세 유지를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1964년 미국산 닭고기에 유럽이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도 경트럭에 25%의 관세를 물리는 것으로 맞섰다. 닭고기 관세는 이미 오래전에 폐기됐지만 트럭 관세는 그대로 남아 있다.

대개 자국의 이익에 맞춰 교묘하게 관련 룰을 활용하고 약빠르게 조종하는 방식에 의존하긴 했지만 중국이 불공정 무역국이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크레딧스위스의 2015년도 집계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비관세 보호주의 조치를 가장 많이 취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해당 기간 미국이 취한 보호주의 조치는 중국이 채택한 동일한 조치의 세 배에 달했다. 게다가 그것은 트럼프가 등장하기 이전의 얘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을 준수하길 원하면서도 정작 트럼프 자신은 WTO 규정을 위배하거나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는 캐나다와 독일 등 ‘위협적인’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을 둔화시키기 위해 ‘국가안보 예외조항’을 동원했다.

중국에 대해 트럼프가 요구하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장 개방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가 베이징에 건넨 것은 2020년 대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국내 여러 주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의 쇼핑 목록이다. 이 목록에 포함된 중서부산 대두를 생각해보라. 이건 무역전략이라기보다 재선전략에 가깝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은 국가주의의 방향으로 중국의 등을 떠밀었다. 베이징이 트럼프의 소원 목록(wish list)을 충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 혹은 관영기업들이 앞장서 그가 지정한 상품들을 구매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무역전략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됐을지 몰라도 지난 75년간 전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제공한 시스템을 파괴하는, 고도로 정치화되고 통제 불가능한 레킹볼(wrecking ball·건물 철거용 쇳덩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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