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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칼럼] 미중 무역마찰과 한일갈등의 데자뷰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

국제여론전 동원 韓 주변화 시도

日의 한일갈등 대처법 美와 닮아

위기를 미래전략으로 바꿀수 있는

장기기획능력 갖추는 기회 삼아야





강제징용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위반하고 신뢰를 저버렸다고 간주하고 한국산업의 중추인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경제보복을 가했다. 일본이 서방국가를 이탈해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경제보복과 연계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8월6일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 참여해 “한국이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한 발언에 비춰보면 일본 스스로 역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결했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철저하게 사과했고 중국 침략 사실도 인정했지만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의 불법성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라 체결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다시 쓰지(rewrite) 못하게 하겠다는 일종의 대못 박기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 1965년 체제는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에 기초한 반공주의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역사 문제의 분출을 강제적으로 억압한 것이었다.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되고 식민지배 피해자의 권리선언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사건의 맥락에서 보면 일본의 경제보복은 개헌을 위한 외부의 적을 만들고 역사 문제의 도미노 현상을 막기 위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국면과 구조의 관점에서는 동북아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일본 패싱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특히 한반도 냉전구조가 약화되고 이에 대한 한일 간의 인식 차가 커지자 일본은 한미일 협력구도에서 한국을 고립시키는 한편 그 자리에 수정주의 역사관에 기초한 아베의 강대국 외교를 두고자 했다. 이처럼 일본이 독자노선을 추구한 데는 미국을 철저하게 묶어놓을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아시아 안보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아웃소싱을 시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했다. 일본도 취약해진 일본 민주주의와 평화기반을 충분히 활용해 전범국의 멍에를 벗고 자위대를 헌법에 명문화해 역내 군사적 존재감 확보를 시도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도 한일갈등에 관여하나 중재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대신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는 미중 무역마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가 무너지고 미국의 단일패권이 약화되자 일본의 한일갈등 대처법이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략적으로 역내 한국의 역할을 주변화하고 경제적으로는 국력의 격차를 좁히며 추격해오는 한국을 견제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국제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국을 중립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8월10일에는 과거사 문제와 역사 문제로 중단된 중일 전략대화가 7년 만에 재개됐고 내년 봄에는 중일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변화의 와중에 중국 정부도 양국갈등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바란다는 원칙 이외에는 논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한일갈등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동력 약화의 어부지리를 얻는 등 의도하지 않은 소득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한국의 대응 모두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다. 일본도 제 발등을 찍는 치킨게임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사과 없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분쟁에 대비하는 저강도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대일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결기만으로 이룰 수 없다는 점을 파악하고 비례의 대응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위기를 미래 국가전략으로 바꾸는 장기기획 능력, 매몰비용을 줄이는 정치력, 한일갈등을 기억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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