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는 ‘신용중국(www.creditchina.gov.cn)’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얼핏 보면 금융회사인 듯하지만 실상은 중국 정부가 14억 인구의 사회신용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말하자면 중국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사이트다. 사이트 한쪽에는 기차나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의 실명이 게재돼 있기도 하다.
#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중국 베이징 왕징에는 도심인데도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다. 오히려 신호등보다 흔한 것이 폐쇄회로(CC)TV 감시카메라다. 자동차 흐름을 지켜보는지, 지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지 모를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돼 24시간 작동되고 있다.
사회안정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중국 정부의 통제 강도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권력이 독점한 감시체제인 ‘빅브러더’에게 통제되는 사회가 21세기 중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1984’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것과 같은 해인 1949년에 출간됐다. 출간 70주년을 맞아 소설에서 묘사됐던 디스토피아는 건국 70주년에 이른 중국의 현실과 적잖이 맞아떨어진다.
‘신용중국’ 시스템은 일례에 불과하다. 전국을 촘촘히 얽는 감시카메라가 14억 국민들의 일상을 제한하고,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통제하는 학교의 사상교육도 강화되고 있다. 해외정보가 철저히 차단됨은 물론 자국 내 인터넷 검열도 점차 심해지고 있다.
영국 정보기술(IT) 전문 컨설팅 업체 컴패리테크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당 감시카메라가 많은 세계 도시 10곳 중 8곳이 중국이었다. 조사 대상인 120개 도시 가운데 인구 1,000명당 공공 CCTV가 가장 많은 곳은 168대에 달한 충칭이었다. 충칭에만도 260만대 가량의 감시카메라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 광둥성 선전, 상하이, 톈진, 산둥성 지난 순이었다. 10위권 밖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감시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가 12.40대(14위)를 기록했다.
이 결과에 대해 중국인들도 복잡한 감정이다. 충칭에 사는 세라 왕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안전 측면에서 감시카메라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계속 감시받고 있다는 우려를 떨치기 힘들다”고 전했다. 컴패리테크는 중국 정부에서 계획 중인 추가설치 작업이 이뤄지면 현재 2억대 수준인 감시카메라 숫자가 오는 2022년 6억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중국 인구 2명당 1대꼴이다.
중국이 앞선 것은 감시카메라 숫자만이 아니다. 감시카메라 기술에서도 중국은 선두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막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CCTV 제조업체로 부상한 중국 하이크비전 관계자는 “얼굴이나 신체 특징, 걸음걸이로 어디서나 사람들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며 갑자기 뛰는 사람이나 군중집회처럼 비정상적인 활동도 감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이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이어 하이크비전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래제한 대상에 올린 것은 도·감청을 통해 민감한 정보가 영상을 통해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감시카메라가 국민들의 행동을 규율한다면 사회신용 평가는 생활방식을 통제한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 국민과 기업의 신용등급을 점수화하는 사회적 신용체계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은 중국이 모든 국민이 풍족한 사회를 의미하는 ‘샤오캉(小康) 사회’를 완성하려는 해이기도 하다. 중국식 샤오캉 사회는 완전한 통제가 이뤄지는 사회가 되는 셈이다.
당초 중국의 신용평가는 금융거래를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범위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악성댓글을 달거나 일자리를 자주 바꾸는 사람, 최근에는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지 않는 사람도 신용점수가 깎인다. ‘신용중국’ 사이트를 보면 개인은 신용코드에 따라 구별된다. 14억 인구를 ‘사회신용’이라는 이름으로 점수화하고 반사회적 행위를 억제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둔화와 함께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월 신규 ‘신용불량’ 개인과 기업·기관이 각각 13만6,047명, 5만4,484개였는데 7월에는 26만5,187명, 37만4,102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서맨사 호프만 호주전략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공산당이 정말 진지하게 문제 해결을 바란다면 시민사회와 법치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인들은 이 같은 통제 강화에도 심각하게 반발하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사상교육’의 영향으로 인식과 사고가 획일적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국가를 우선한다는 이른바 ‘애국주의’라는 이름 아래 실시되는 사상교육은 최근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실은 최근 ‘신시대 학교 사상 정치 이론 수업 강화에 관한 약간의 의견’이라는 공문을 전국에 배포하고 시진핑 사상에 대한 학생 및 일반인 대상 교육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경기둔화에 흔들리는 민심을 사상교육으로 다잡자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의 전방위적인 감시와 통제는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 문화에 좀 더 익숙해지고 싶어 현지 중국인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은 사회주의 체제 선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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