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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강남불패 깨는 것만이 능사인가...도심 대체주거지 확보가 최선"

<이현석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

인구 감소·개발 수축기에 추가 신도시카드는 사회적 낭비

세계는 '뉴 어버니즘'이 대세...공간정책 패러다임 전환 필요

용도지역 규제 탄력적으로 풀어 도심 고밀도 복합개발 해야

'재건축·재개발=투기' 사고방식 버리고 주택공급원 활용을

이현석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은 “인구 감소와 개발 수축기에 신도시 개발은 사회적 낭비가 크다”며 “신도시에 투입될 재원을 서울 강북에 쏟아붓는 것이 현실적인 방책”이라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우리 국민의 부동산 애착은 유별나다. 가계자산의 70%가 부동산에 쏠려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10년도 더 됐건만 집값 불안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 집값 폭등에 지난 2017년 강력한 수요억제책인 ‘8·2대책’과 지난해 ‘9·13대책’에 이어 3기 신도시 카드까지 꺼냈다. 잡히는 듯했던 집값이 다시 꿈틀대자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예고했다. 규제 강화와 신도시 개발이 능사일까. 도시계획 전문가인 이현석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은 “번지수가 틀렸다”고 단언했다. 그는 “전통적인 수요 억제와 대규모 택지개발 방식의 해법은 한계에 봉착했다”며 “창의적이고 대담한 도시계획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학회장을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집값은 꽤 안정됐다. 심지어 ‘부동산은 끝났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왜 집값이 뛰었는가.

△집값이 정체돼 있는 기간이 있다면 그만큼 오를 잠재력을 축적했다고 봐야 한다.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럿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경상성장률이다. 경제가 성장했고 소비자 물가도 상승했는데 집값이 오르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나. 문제는 서울 강남 집값인데 이렇다 할 대체 주거지가 없다 보니 상승률이 높다. 재건축이 신규 주택공급원이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주택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

△전국의 주택 인허가 통계를 보면 그렇게 볼 수 있지만 허수가 많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도 포함된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지역에 충분히 공급되는지 여부다. 결국에는 서울의 문제이고 좁게 보면 강남의 문제다. 강남 대체 주거지가 공급된다는 시그널이 확실히 있어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면 투기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시적으로는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틀어막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예전만큼의 투기 수요가 가세할지도 의문이다.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장치는 지금도 있다. 임대주택을 짓는 규제도 있다. 정책을 적절히 조합하면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재건축을 투기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다. 수요를 충당할 주택공급원으로 보고 선순환시켜야 한다. 주택은 인구와 기술·선호도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서울 아파트는 1970~1980년대에 지은 낡은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살아본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한지 안다.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분양가상한제를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분양가상한제를 두고 논란이 크다.

△가격 규제는 하책이다. 가격을 규제하면 공급이 줄어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책 목표는 집값 안정에 있는데, 분양가격을 규제한다 해도 기존 주택 가격이 덩달아 떨어지지 않는다. 분양가 규제는 공급자가 챙기던 시세차익을 분양받은 사람으로 이전하는 것일 뿐이다. 다만 한창 달아오른 시장을 냉각시키는 심리적 효과는 있을 것이다.

-일부 지역의 분양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는 시각도 있다.

△재건축 조합이나 건설회사가 시장 과열 분위기에 편승해 분양가격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정부의 개입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공급자가 과도하게 분양가를 책정해도 미분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격 규제에 앞서 높은 분양가격이 시장에서 왜 먹히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원인을 찾아내고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주택에 대한 글로벌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도심 선호 현상이 강해지는 ‘뉴 어버니즘(new urbanism·신도심주의)’이 대세다. 과거에는 교외에 주거지를 두고 출퇴근하다 이제는 도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2030세대의 1인 가구도 늘고 있다. 이들은 도심에서 일하고 자고 즐기는 세대다. 은퇴자도 한적한 시골을 찾다 요즘은 도시로 돌아온다. 서울 외곽 베드타운의 아파트 가격이 정체된 것은 선호도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반면 서울 도심의 민간 주택공급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도심에서 창의적인 주택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도심 주택공급 방안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공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도심 내 건축물의 용도변경을 탄력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 용도지역의 칸막이가 너무 높다. 두 번째는 고밀화 개발이다. 테헤란로의 빌딩은 대게 20층 안팎이다. 30여년 전의 도시계획이지만 지금은 인근 한국전력 부지에 100층을 올리지 않는가. 특정 용도지역에서도 주거·업무·상업시설이 혼재된 복합개발이 필요하다. 강남 지역의 복합화 리모델링이 부담스럽다면 강북에 대체 주거지를 개발해볼 만하다. 세 번째가 기존의 주택공급원인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다. 분양가를 비롯한 중첩규제로 억누르기만 한다면 서울의 주택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 개발이익 환수 장치도 있고 보유세 같은 수단도 있지 않은가.

김현미(왼쪽)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신도시 추진계획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서울경제 DB




-용도변경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 않나.

△전통적인 도시계획은 주거·업무·공장 지역을 분리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복합화가 대세다. 공장도 예전 같은 굴뚝형 시설이 아니라 무공해 첨단공장이다. 온라인 쇼핑과 배송이 결합하면서 전통적인 점포들이 경쟁력을 상실한 채 퇴장하고 있다. 강남 지역 오피스의 평당 가격은 강남 아파트의 절반 정도다. 주택 수요는 차고 넘치는 반면 빌딩은 공실이 발생한다.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영국은 ‘PD(Permitted Development) 정책’이라고 해서 오피스의 주택 전용을 자유롭게 허용한다. 우리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3기 신도시 개발은 시대 흐름에 역행이라는 말인데.

△그렇다. 정부 스스로 이미 2014년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하면서 대규모 주택공급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고 앞으로 인구가 줄어 주택개발 수요도 준다. 3기 신도시는 서울의 수요층을 흡수하지도 못한다. 팽창주의적 공간 정책을 할 시대가 지났다. 인구 감소와 개발 수축기에는 주택이 코어(핵심) 중심으로 재배치된다. 3시 신도시가 개발되면 새로운 신도시는 살아도 인근 신도시는 황폐화할 우려가 크다. 팽창기에 쓸 정책을 수축기에 동원하는 것이 안타깝다. 도시 안쪽에 투입해야 할 재원을 도시 밖에다 쏟아붓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직접 건설비용 외에 도로와 철도 같은 인프라 비용도 낭비된다. 이런 재원을 강북에 쏟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이다.

올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에서 열린 3기 신도시 철회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신도시 아웃’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신도시를 포기하자는 말인가.

△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나마 부작용을 줄이는 게 상책이다. 인근 베드타운의 황폐화를 줄이려면 3기 신도시와 기존 주거단지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한꺼번에 추진할 것도 아니다. 속도전은 더더욱 금물이다. 20년 정도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찬찬히 추진해야 한다.

-이른바 ‘강남 불패 신화’가 언제까지 이어지겠나.

△반드시 깨는 것만이 능사인가. 집값이 떨어지면 더 난리가 아닌가. 깨겠다는 생각보다는 강남에 상응하는 도심 코어를 만드는 게 현실적인 최선책이다. 이런 지역이 몇 군데 있다. 코레일 부지인 용산국제업무지구가 그에 해당한다. 성동구 성수동을 비롯한 강북 강변 주변이 경쟁력이 있다.

-이제는 해외처럼 아파트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도 아파트를 선분양했다. 만약 선분양제가 없다면 1980년대 말 분당 신도시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후분양제의 관건은 주택금융 조달인데 이제는 연기금 등이 있어 재원 마련의 여건은 어느 정도 형성됐다. 다만 후분양을 한다면 분양가격이 올라가는 문제가 있다. 선분양제를 굳이 후분양제로 바꿀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유리한 제도를 선택하도록 하는 게 좋다. 두 개의 길을 모두 열어두면 된다. /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이현석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


■He is…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건설에 입사한 뒤 주택사업과 리비아 건설현장 등을 누볐다. 대우그룹의 세계 경영의 일환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에서 도시공학 박사를 받고 귀국한 뒤 대학교수로 인생 행로를 바꿨다. 2003년부터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로 도시개발 및 계획·개발금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올해부터 2년 임기의 제12대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을 맡고 있다.

■뉴 어버니즘… 도시 외곽 팽창 대신 내부 고밀도 개발

도시 외곽을 베드타운 등으로 개발해나가면 사회적 문제가 증가한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새로운 도시계획 사조. 지난 1980년대 말 건축가 피터 칼소프 등이 미국에서 추진한 뉴 어버니즘(new urbanism) 운동은 교통과 문화시설 등 생활 인프라를 갖춘 도심을 고밀도·복합 재개발하는 것이 외연 확장 형태의 개발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원거리 출퇴근에 따른 사회적 낭비를 줄이고 도시 외곽 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외부 팽창을 지양하는 대신 도심 내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에서 ‘압축도시’와도 일맥상통한다. 최근 도시계획의 유력 사조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시도 지난해 말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외부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영국의 PD 정책… 인허가 없이 오피스의 주택 전용 가능

영국이 2013년부터 추진한 건물 용도변경 정책. 영국 정부는 도심 내 주택난과 빌딩 공실이 심화하자 특정 지역에 한해 별도의 인허가 절차 없이 민간 자율적으로 오피스빌딩을 주택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했다. PD는 ‘인가된 개발(Permitted Development)’의 약자다. 역세권에서는 주차장 설치 기준도 완화했다. 이 정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택공급에 따른 재정지출을 줄이고 주택 가격 안정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오피스 임대료 상승과 주거 품질 저하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영국 외에도 미국과 호주 등이 오피스의 주택 전환 정책에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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