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경과 배경에서 나고 자랐는지가 향후 삶을 좌우한다는 뜻의 ‘금수저’ ‘흙수저’ 식의 수저론은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진 우리 시대의 현실을 꼬집는다. 여기 ‘기회 사재기’라는 말도 새겨볼 만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1929~2008)가 저서 ‘지속되는 불평등’에서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칼 마르크스가 즐겨 사용한 ‘착취’가 타인의 노동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를 불공정하게 빼앗아오는 것이라면 ‘기회사재기’는 무엇을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확보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이미 확보한 접근권을 차지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그 자원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 ‘기회 사재기’이다.
영국 출신의 경제학자인 저자는 상위 20%의 중상류층이 불평등한 자신의 계급을 유지하는 요인으로 이 기회 사재기를 지목한다. “이는 중상류층이 실력을 갖춰서가 아니라 경쟁의 판을 조작해서 승자가 될 때 발생한다”는 저자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 그리고 인턴 기회의 불공정한 분배”를 정조준해 세대 간 계급 재생산을 저격한다.
“상위 20%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탱크 연구자, TV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부의 불평등에 관한 책들은 이미 숱하게 나왔지만 이 책은 그간 주류였던 ‘1%와 99%의 불평등’이 극소수의 부유층을 조준하던 것과 달리 중상류층 20%를 ‘보다 광범위하게’ 겨눈다. 1%와 99%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최상위층인 슈퍼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던 것이 중상류층 지식인들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계급에 대한 중상류층의 이중적 태도를 파헤친 이 책은 재벌과 부자들을 비판하던 ‘지식인’들이 정작 자신들의 자녀에게 특권을 물려주기 위해 부동산 투기나 위장 전입 등을 일삼는 우리의 현실과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부제는 ‘상위 20%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이다. 1만7,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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