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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잘사니즘’에 기업이 설 자리는 있나

정민정 국제부장

회담 성공 위해 기업인 대거 동행에도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잇따라 통과

안에선 규제, 밖에선 '트럼프 리스크'

'경제 핵심은 기업' 외치며 반기업 입법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중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취임 82일 만에 성사된 한미정상회담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쓰는 바람에 초긴장 상태에서 회담이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 메이커”라고 띄우며 반전을 꾀했고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변하고 있다”며 폭풍 칭찬을 이어갔다. AP통신은 “이 대통령이 아부(flattery)로 백악관 방문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이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된 가운데 관심은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쏠린다. 이 대통령의 ‘환심 외교’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6000억 달러(에너지 구매 1000억 달러 포함)에 달하는 대미 투자인 까닭이다. 삼성전자는 생산 거점 확대를 위해 2030년까지 3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로봇 등에 향후 4년간 260억 달러를 투입한다.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4대 그룹 총수 등 기업인 16명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기업인들이 미국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던 그 시각, 한국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더 세진’ 2차 상법 개정안이 연이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용자 범위 확대가 골자인 노란봉투법은 구조조정 및 정리 해고, 투자에 따른 사업 이전 및 통폐합 등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한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이후 후속 조치로 이어질 해외투자마저 파업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도 예고했다. 산업계에서는 “한국에 공장을 세울 이유가 없어졌다.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가 아쉬울 때는 기업들에 SOS를 치면서 경영을 옥죄는 규제 법안을 밀어붙이니 한국을 떠나겠다는 아우성이 쏟아지는 것이다.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폭탄을 퍼부으며 새로운 통상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라운드’다. 무역 질서 전환을 넘어 최근에는 시장경제 질서마저 뿌리째 흔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집요하게 공격하더니 보조금 대가로 인텔 지분 10%를 손에 쥐었다.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인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쫓고, 민간 기업의 의사 결정까지 간섭하고 있다. “졸속적 특혜 자본주의(월터 아이작슨)” “국가자본주의(월스트리트저널)”라는 쓴소리가 나오지만 요지부동이다.



‘규제 공화국(한국)’과 ‘트럼프 공화국(미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기업들의 처지는 참으로 곤궁하다. 자국 기업을 향해서도 막무가내식 요구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기업에 야박하게 나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당장 인텔에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대신 지분을 가져가자 삼성전자에도 같은 방식의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6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가 성공할지도 미지수다. 임금 격차가 걸림돌로 꼽힌다. 지난해 미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8만 3000달러, 한국은 3만 4800달러 선이다. 그럼에도 일자리를 늘리고, 이를 지렛대로 지지율을 올려 내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트럼프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트럼프는 계획 경제 총사령관(파이낸셜타임스)”이라는 비판에도 그가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대선 후보 시절 ‘잘사니즘’을 외친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재계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할 일은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라며 “그 핵심이 경제이고,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잘살자는 ‘잘사니즘’은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들이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여당의 반(反)기업 입법 폭주는 고용 기피와 기업 엑소더스, 하청 생태계 붕괴 등 3대 쇼크를 불러와 기존 일자리마저 증발시킬 게 자명하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 공화국’에서 기업과 근로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민정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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