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부사인 매킬로이를 꺾고 정상에 서는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브룩스 켑카)
“켑카를 이기기 위해 켑카처럼 쳐야 했습니다. 그는 최종 라운드도 첫날처럼 경기합니다.” (로리 매킬로이)
켑카(29·미국)와 매킬로이(30·북아일랜드)의 라이벌 구도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강타하며 세계 골프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영원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4·미국)가 지난 4월 최고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로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고 최근에는 무릎 수술까지 받았지만 오는 12일 2019~2020시즌 개막을 앞둔 PGA 투어는 기대로 가득하다. 장타를 앞세운 화려한 플레이 등 상품성으로 무장한 켑카와 매킬로이가 더 뜨거울 라이벌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킬로이는 스물두 살이던 2011년에 메이저 US오픈을 제패하며 일찌감치 우즈의 후계자로 불렸다. 켑카가 US오픈 등 메이저 2승을 거두며 이름을 날린 2017~2018시즌에 매킬로이는 일반 대회 1승에 그쳤다. 그러다 2018~2019시즌 나란히 3승을 거두고 곧 발표될 PGA 투어 올해의 선수를 놓고 2파전을 벌이면서 흥미로운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다. 벨파스트 텔레그래프는 “우즈와 필 미컬슨(미국) 이후 골프계에는 그에 비견할 라이벌 구도가 없었는데 켑카와 매킬로이라면 기대할 만하다. 둘의 대결은 진정한 헤비급 매치 같다”고 했다.
둘의 라이벌 구도는 지난 시즌 막판인 7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페덱스 세인트주드 대회부터 불을 뿜었다. 똑같이 메이저 4승을 자랑하는 둘의 최종 라운드 챔피언 조 맞대결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1타 앞선 채 출발한 매킬로이가 퍼트 난조로 71타를 적은 반면 켑카는 보기 없이 65타를 쳤다. 켑카가 역전 우승했고 매킬로이는 켑카에게 5타 뒤진 공동 4위로 미끄러졌다. 앞서 고향에서 열렸던 메이저 디 오픈에서 컷 탈락했던 매킬로이에게는 또 한 번의 수모였다. 최종 라운드 티 타임 2시간여 전에 도착해 연습했는데도 40분 남기고 도착한 켑카에게 완패했다. 켑카는 경기 뒤 “매킬로이와의 대결은 언제나 재밌다. 그를 이기고 우승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당시 퍼트 수가 34개나 됐던 매킬로이는 한 달 뒤 시즌 마지막 대회인 투어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때는 3m 안쪽 퍼트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넣었다. 나흘간 1.8m 이내 56개 퍼트도 모두 넣었다. 선두 켑카에게 1타 뒤진 2위로 4라운드를 출발해 18언더파로 역전 우승했고 같은 조 켑카는 13언더파 공동 3위로 마쳤다. 한 달 전과 판박이로 5타 차로 되갚아준 것이다. 경기 후 매킬로이는 “한 달 전 패배를 설욕했다”며 기뻐했다. 이어 “일요일 경기(4라운드)를 목요일이나 금요일(1·2라운드)처럼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풀어나가는 게 늘 과제였다. 켑카가 그런 것을 잘하는데 그를 이기려면 그처럼 돼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켑카는 지난 시즌 메이저 PGA 챔피언십과 메이저급 WGC 대회 등 3승을 올렸다. ‘메이저 전문가’답게 4대 메이저에서 매번 4위 이상의 성적을 냈다. 역시 3승의 매킬로이는 메이저 우승은 못 했지만 제5 메이저로 통하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거액 보너스가 걸린 최종전을 제패하면서 페덱스컵 1위에 올랐다. 톱10에 들지 못한 대회가 5개뿐일 정도로 꾸준했다. 매킬로이는 현재 30세 이하 선수들 중 PGA 투어 최다승(17승)을 올렸다. 지난 시즌 PGA 투어에서 상금과 페덱스컵 보너스 등으로 총 2,428만달러(약 290억8,500만원)를 벌었다. 켑카는 1,618만달러(약 193억8,200만원)를 모았다.
7월 WGC 대회 이후 둘은 유독 자주 같은 조로 편성되고 있다. 투어와 대회 주최 측이 최고의 흥행카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시즌 막판의 장군멍군은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둘은 상대의 존재가 좋은 자극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음달 31일 상하이에서 열릴 WGC 시리즈 HSBC 챔피언스가 2019~2020시즌 첫 동시 출격 대회다. 매킬로이는 “켑카를 최종 라운드 챔피언 조에서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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