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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기술자립'은 허상…日보복 대응할 기초체력 길러야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5>역사를 통해 본 기술자립론

日부품 수입해 국내조립 그쳤던'국산화'

도입한 부품 국내제조 성공시키며 발전

이후 '대일기술종속 탈피'로 의미 변화

변동하는 국제정세 유연히 대처하려면

여러 분야 中企 기술력 향상 목표 삼아야

부품소재 기술자립화가 시급한 국정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반도체 실험실에서 ICT소재부품연구원들이 연구 중인 반도체 웨이퍼를 검사하고 있다./서울경제DB




지난 7월 초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소재 및 부품 세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동안 전략 수출품목을 포괄적으로 심사하던 절차를 중단하고 개별 허가 취득을 의무화한 것이다. 곧이어 일본 정부는 두 나라 사이의 신뢰관계가 손상됐다는 이유로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일본 측의 조치로 영향을 받게 될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2018년 9월 기준 전체 수출액의 4분의1가량을 차지한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기술력을 활용해 외교적 ‘정밀타격’을 한 셈이다.

한국이 일본의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초에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일본의 결정을 ‘경제보복 조치’라고 규정하고 이를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려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민폐 행위’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대체 수입처를 확보하고 원천기술을 도입하거나 국산화해 ‘기술자립’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이 뒤따랐다. 그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이 뒤떨어져 있는 소재 분야의 기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앞으로 3년 동안 5조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보해 집중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의 사태가 테크놀로지와 경제·무역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반도체 소재를 둘러싼 분쟁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배경으로 했고 이후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로 확대됐다.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테크놀로지가 외교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의 외교 관계는 많은 경우 원자폭탄, 장거리 탄도탄, 핵잠수함 등 첨단 무기기술뿐만 아니라 단파라디오 방송이나 가전기기의 우수성과 같은 민간 기술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이처럼 현대 기술은 실제로 사용될 때만큼이나 사용되지 않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표현에 따르면 ‘상비적인 준비물(standing-reserve)’이 테크놀로지의 정수(精髓)인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경제DB


2019년 일본의 기술보복 조치 이후 각계에서는 이른바 ‘1965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한일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례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 산하 ‘1965년 체제 청산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5년 맺은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이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이뤄졌으며 이후 50여년 동안 변화한 양국의 위상과 국제관계를 고려해 새로운 관계를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기술적인 측면의 ‘1965년 체제’ 역시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의존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는 통계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62년부터 1978년까지 한국의 기술도입액 2억5,700달러 중 45%가 넘는 1억1,700달러를 일본에 지불했다. 같은 기간 동안 28%에 해당하는 미국에 비해 일본에 대한 기술의존도가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1960~1970년대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시절 일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한국이 일본 기술에 의존하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내기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한 경제블록을 구축하기를 원했다. 반공 못지않게 반일 정서가 강했던 한국이 한일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배경이 중요하게 작동했다. 일본 기업들은 국교 정상화 이전부터 이미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1965년 이후 양국 기업 사이의 기술제휴가 물밀 듯이 이뤄졌다. 한국의 기술자들 중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으로부터 정규·비정규 교육을 받았다는 역사적 배경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긴밀한 소통이 어려운 미국인보다는 말이 통하는 일본인으로부터 기술을 배우기 용이했던 것이다. 일본인 기술자들이 한국의 지리적·문화적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대표적으로 1967년 착공한 소양강댐의 설계를 맡은 일본공영(日本工營)의 창업자 구보타 유타카(久保田豊·1890~1986)는 식민지 조선에서 수풍댐을 비롯한 수력발전소를 지었던 경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1946년 일본공영을 창립해 한국·미얀마·베트남 등지에서 댐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한국인 기술자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술자립’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다만 ‘기술자립’ 또는 ‘기술국산화’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1960년대의 기술국산화는 주로 기계 부품의 국산화를 의미했다. 농기계 제조업체인 대동공업은 한일협정이 체결되기 전인 1962년 미쓰비시 중공업과의 기술제휴를 맺고 한국 최초의 국산 경운기를 생산했다. 일본으로부터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한 후 진주의 공장에서 조립해 완제품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정부에서 계획한 ‘국산화 목표’에 따르면 ‘국산화 비율’을 1971년 92%, 1972년 98%, 1973년 100%를 달성하게 될 것이었다. 비록 일본 기업으로부터 도입한 기술이지만 모든 부품을 한국에 위치한 공장에서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1960년대 ‘기술국산화’의 목표였던 것이다. 이후 1970년대에 정부는 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해 국내에서 소화·개량한 기술을 장려하고 보호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했다. 수입품을 국산화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발생한 비용에 대해 세금을 감면하고 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한국이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고 전기·전자와 자동차 산업 등 첨단기술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도 기술의 ‘1965년 체제’는 강고하게 유지됐다. 1980년대 들어서는 한국의 높은 대일 기술의존도는 엄중한 문제로 나타났다. 당시 언론은 첨단부품에 대한 대일 수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황 속에서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한국 기업의 원가가 상승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VTR·컬러TV·팩시밀리·컴퓨터 등 첨단 전자제품의 핵심부품의 90%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다. 급기야 1991년 상공부와 과학기술처는 대일 기술종속 탈피를 위해 ‘대일자립기술개발사업 5개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기로 결정하기까지 했다.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7,400억원을 투입해 4,500여 품목의 핵심기술을 국산화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렇듯 1965년 이후 일본에 대한 기술의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보면 2019년의 ‘기술자립론’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의 최신 버전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1970~1980년대에도 미국과 일본 무역분쟁이 심화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을 거절하거나 터무니없는 기술사용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사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과거에 비해 훨씬 노골적으로 자국의 테크놀로지를 외교의 무기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러한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적으로 필요한 부문의 국내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환경 속에서 대기업 중심의 수출 상품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기술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해온 것은 전략적 오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오늘날 완벽한 ‘기술자립’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1965년 이후 두 나라의 경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완벽한 분리는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의 목표는 일본으로부터의 기술자립이 아니라 변동하는 국제 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기초체력의 증강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생태계를 다변화해 다양한 부문의 중소기업들이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술자립’이라는 수사(修辭)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실제와 부합하지도 않을뿐더러 국내 기술력의 향상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과기대 교수,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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