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없다.’ 평화를 강조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문구다.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 건국기 정치인·사상가·기업인·발명가인 벤저민 프랭클린. 1783년 9월11일자 두 장짜리 편지의 맨 마지막 단락에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결코 없었다(There never was a good war or a bad peace)’고 썼다. 수신자는 다섯 살 아래 친구이며 정치인·군인으로 활동한 조시아 퀸시. 미국 건국 초기 6대에 걸쳐 주지사와 하원의원·시장 등을 배출한 정치가문의 시조인 퀸시 시니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장한 대로 프랭클린은 언제나 평화를 옹호했을까.
그렇지 않다. 영국과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온건파에 속했으나 독립전쟁이 터지자 성심을 다해 신생 독립국의 기틀을 다졌다. 유럽 대륙에서도 지식인으로 통하던 그는 독립을 선언한 1776년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의 원조와 지원병을 이끌어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북미 13개 주의 연합체인 대륙회의의 프랑스 대표부를 맡아 정식 독립군의 대사도 아니면서 전권대사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덕에 대륙군은 프랑스의 막대한 원조를 받을 수 있었다. 견해가 달라도 위기상황에서는 국가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풍토가 참 부럽다.
독립전쟁 승리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프랭클린이 평화를 강조한 이유는 간단하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으니까. 편지가 발송된 시점도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캐나다와 국경 및 어업권을 획정한 파리평화조약(1782년 9월3일) 직후다. 프랭클린이 친구 퀸시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두도 공무에 바빠 오랜만에 소식을 띄운다는 사과로 시작한다. 편지에는 공평하게 체결됐으며 신이 주신이 평화와 번영의 기대 속에 대표직을 기쁘게 사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편지 말미에서 프랭클린은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이제 영국은 물론 전 인류와 친구다. 아마도 다시는 전쟁을 겪지 않을 것이다.’
독립을 쟁취한 입장에서 편하게 평화를 말했을 것 같은 프랭클린의 예언은 빗나갔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가능한 전쟁을 피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나 미국의 국가 성격은 어느새 바뀌었다. 산업구조와 병력 형태를 보면 전쟁 국가다. 프랭클린의 소망대로 외부 분쟁에도 휘말리지 않고 이 땅에서도 전쟁이 없기를 바란다. 전쟁론을 지은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은 위대한 서사시와 영웅을 낳는 게 아니라 피눈물과 고통만 안긴다. ‘소수가 충돌해 다수가 피를 보는 전쟁 행위(윈스턴 처칠)’에 희생되지 않기를.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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