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정쟁의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지형이 갈수록 험난해지고 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유화 기조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반도 안보에 부담을 키운데다, 일본의 새 내각에 강경 우파가 전면 배치되며 반한(反韓) 기조 심화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북미 간 밀착이 우려되는 와중에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한국과 일본의 대북공조가 난항을 겪으면서 외교해법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나는 지난밤 존 볼턴에게 그가 일하는 것이 백악관에서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알렸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내 ‘슈퍼 매파’로 북한 등 주요 대외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파열음을 내온 볼턴 보좌관이 물러나면서 미국이 북한의 요구대로 단계적·점진적 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11일 국내의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볼턴 경질과 관련해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빅딜’, 즉 볼턴이 주장해온 ‘리비아 방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볼턴 보좌관은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해 북한의 반발을 샀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유화적으로 바뀌며 완전한 북핵 폐기가 한발 더 멀어진 가운데 대북정책에서 한목소리로 북한을 압박해야 할 일본과의 공조도 요원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단행한 개각에서 극우 성향의 측근들을 대거 중용하며 한일갈등 심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대신 새로운 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하기우다 고이치 집권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문부과학상에 임명됐으며 총무상 재직 시절 현직 각료 신분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다카이치 사나에 중의원 의원이 총무상에 재임명됐다. 하기우다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계획하고 이끈 인물이다. 한국에 대한 ‘외교 결례’로 논란이 된 고노 다로 외무상은 방위상에 기용됐다. 아베 총리가 ‘한국 때리기’에 앞장섰던 인사들을 요직에 앉혀 앞으로 한일외교는 한층 꼬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볼턴의 경질은 북한 비핵화나 한국 안보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개각 역시 강경파로 내각이 채워지면서 한일관계에 전향적인 정책을 낼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고 우려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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