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의 ‘끝판왕’으로 불린 ‘9·13대책’이 시행 1년을 맞은 가운데 오히려 주택시장 양극화만 더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규제부터 세금중과 등 초강력 대책을 내놓았지만 서울 아파트 값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선 반면 지방 아파트 매매가는 하락폭이 더 커졌다. 전체 주택 거래에서 저가 거래는 줄고, 초고가 거래 비중은 되레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11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9·13대책 이전의 1년간 신고된 주택거래 중 9억원 초과 비중은 17.3%에 불과했으나 이후 1년 동안은 24.7%로 증가했다. 반면 9억원 이하 비중은 82.7%에서 75.3%로 줄었다. 서민들이 주로 찾는 5억원 미만 거래 비중도 대책 1년 전에는 42.5%였으나 이후 1년간 38.2%로 감소했다. 현금부자 위주로 주택시장이 재편된 셈이다.
아파트 값도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졌다. 한국감정원 기준으로 9·13대책 전후 각 1년간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을 비교한 결과 이전 1년 동안 0.01% 하락했던 전국 아파트 값은 9·13대책 이후 더 떨어져 -2.62%를 기록했다. 지방도 -3.28%에서 -3.88%로 하락세가 가팔라졌다. 서울 아파트 값은 대책 이후 하락했지만 최근 들어 오름세로 돌아선 반면 지방은 하락폭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일부 지방의 경우 가격 하락에 미분양물량 급증까지 겹쳐 주택시장이 붕괴 위험을 맞고 있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9·13대책이 아파트 시장 전체에서 서울 쏠림 현상은 억제하지 못했다”며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심리를 자극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서울은 곳곳 신고가 ...지방은 3억짜리가 2억 초반으로 뚝>
# 지난 2009년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는 서울의 대표적인 초고가 아파트 단지 중 하나다. 지난해 9월 전용 84㎡가 27억원에 거래된 후 ‘9·13대책’으로 한동안 거래가 뜸하다가 올해 3월 나온 급매물이 21억7,000만원까지 떨어져 거래됐다. 하지만 최근 다시 전 고가를 뛰어넘어 28억5,000만원까지 거래되고 현재 호가는 30억원을 넘겼다.
# 경남 창원시 상남동의 6,252가구 대단지인 성원 5단지는 올 8월 전용 84㎡가 2억4,500만원에 실거래됐다. ‘9·13대책’ 전후 거래가 2억7,500만원보다 더 떨어진 가격이다. 올 초의 2억원 초반 시세보다는 다소 올랐지만 2016년 3억원을 넘겼던 데 비하면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9·13부동산대책’이 1년을 맞은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한 단면이다. 서울 아파트 값은 다시 뛰는 반면 지방 아파트는 하락폭이 더 커졌다. 거래량 급감 속에 고가 아파트 위주로 시장이 재편됐고 대형 아파트는 서민 중심의 중소형 아파트보다 집값이 덜 떨어졌다. 분양가상한제 예고는 신축을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 값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은 반등, 지방은 하락 계속=‘9·13대책’ 이전 1년과 이후 현재까지 아파트 매매가격을 비교하면 서울은 하락 전환했고 전국과 지방은 하락폭이 커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전 1년 동안 0.01% 내려갔던 전국 아파트 값은 9·13대책 후 2.62% 더 떨어졌다. 지방도 -3.28%에서 -3.88%로 하락세가 이어졌다. 서울도 예외 없이 8.53% 급등에서 -1.27%로 돌아섰다. 경기도는 1.30%에서 -1.56%로 하락 전환했다.
하지만 7월1일부터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9·13대책도 정책효과가 다하면서 서울 아파트 값은 현재까지 0.23% 반등했다. 7월부터 9월 초까지 강남 아파트 매매가는 0.38%, 서초는 0.40% 올랐다. 반면 전국(-0.37%), 지방(-0.72%)은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3기 신도시의 영향을 받은 고양(-0.95%)은 경기(-0.06%) 전체 하락폭을 훌쩍 넘겼다. 강력한 규제책에 힘이 빠지면서 다시 서울과 지방 사이에 집값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역시도 대대광(대구·대전·광주)을 제외하고는 하락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114 기준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도 지난해 9월과 올 9월을 비교하면 서울은 8억2,911만원에서 8억7,178만원으로 5.15% 올랐다. 전국과 경기도는 각각 2.80%, 1.75% 올랐지만 강원(-0.90%), 경북(-0.77%), 충북(-0.68%), 경남(-0.63%), 부산(-0.54%) 등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거래는 반토막, 고가 비중은 늘어=9·13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거래량 감소다. 대책 이후 올 9월까지 모든 거래가 신고되지는 않았지만 이전 1년간 서울 아파트 거래량(9만7,415건)과 비교하면 56.33% 줄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의 거래 비중이 늘었다는 점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대책 이전 1년 동안 전체의 17.3%(1만6,847건)를 차지했던 9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가 이후 현재까지는 24.7%(1만511건)를 차지했다. 10억~20억원 미만은 12.7%(1만2,325건)에서 이후 18.0%(7,674건), 20억~50억원 미만 아파트도 2.0%(1,965건)에서 3.7%(1,581건)로 비중을 늘렸다. 실제로 초고가 주택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의 경우 지난해 12월 거래가 3건에 불과했지만 올 5월에는 한 달간 무려 23건이 거래되기도 했다.
대출 규제로 소형 아파트 갭 투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똘똘한 한 채’가 강세를 띤 결과라는 분석이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강력한 대출 규제 탓에 상대적으로 소득과 현금이 여유 있는 매수자만이 고가 주택의 매수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면적 기준으로도 대형 아파트가 덜 하락했다. 한국감정원 기준으로 지난 1년간 전국 아파트 중 전용면적 40㎡ 이하는 3.88%, 40~60㎡는 4.11%가 떨어졌다. 반면 102~135㎡는 0.76%, 135㎡ 초과는 0.37% 하락하는 데 그쳤다. 서울 강남 4구는 전용 40~60㎡가 3.85% 떨어질 동안 135㎡ 초과는 -2.24%로 비교적 하락폭이 완만했다.
◇상한제에 신축·청약시장 과열=9·13대책의 효과가 끝나가자 정부가 꺼내 든 카드가 바로 분양가상한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고 있다. 강남 집값 상승을 억제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신축 매매가가 오르고 청약 시장은 과열 양상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9·13대책 이전 1년간 서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18.3대1에서 이후 24대1로 더 치열해졌다. 최근에는 수백대1을 넘는 단지가 나오며 평균 당첨자 가점도 60점을 넘나든다. 반면에 지방 미분양은 7월 말 기준 5만1,740가구로 지난해 9월 5만2,945가구에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수준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은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공급이 위축될 것으로 보여 아파트 값이 중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면서 “거시경제에 큰 영향을 받는 지방은 계속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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