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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료폐기물 통해 세상 보기

홍순원 연세대 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기저귀 소각 보건학적 우려 없는데

의료폐기물로 분류는 타당성 떨어져

외국계자본 고가에 소각장 인수 등

사회가 보여주는 '숨은 진실' 발견





감사의 계절 9월이다. 병원에서 진료와 연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게 웃음을 짓기도 한다. 필자는 의과대학 학부 시절부터 ‘최신’ 의학기술의 발전을 지켜봤고 지금까지 공부를 이어가며 의학의 현상적 사실들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세상일은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지난 7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송영구 교수와 대화하며 이 사회가 보여주는 현상적 사실 속에 숨은 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백명이 넘는 참관인이 뜨거운 열기를 더하던 국회의원회관 회의장에서 송 교수는 감염병 전문가 자격으로 패널 석에 앉아 있었다. 한국의료폐기물공제조합이 의뢰한 ‘요양병원 기저귀 감염성균 및 위해균에 대한 감염성·전염성·위해성 등에 관한 조사연구’라는 제목의 발표가 진행되는 자리였다. 요양병원에서 의료폐기물로 배출된 기저귀에서 폐렴구균·황색포도상구균과 같은 세균들이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굳이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환자의 기저귀에 세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왜 수억원의 돈을 들여 의미를 찾기 어려운 연구를 했는지 궁금했다.

기저귀에서 검출됐다는 세균 대부분은 ‘상재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인체와 주변 환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세균을 의미한다. 보통 인체에서 상재균이 발견됐다고 하면 그 부위에 해당 세균이 군락(colonization)을 이루고 살고 있으나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의료폐기물 소각장에서 채취된 기저귀에서 세균이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 감염성과 위해성이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연구 제목과 목적은 ‘감염성·전염성·위해성’ 조사인 것과 달리 연구 결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기저귀에서 균이 나왔다는 것 외에는 없다. “연구 설계 자체가 연구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이 아니므로 본 연구는 학문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내용”이라는 송 교수의 의견이 과연 청중의 귀에 얼마나 들어갔을까 반문해본다. 이런 사실 전달만으로도 회의장은 순식간에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고성으로 가득 찼다고 송 교수는 말했다. 왜 이러한 연구가 시작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의료폐기물 관리는 복잡하다. 전용 용기에 별도로 배출하고 전용 냉장차량으로 운반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전용 소각장’에서 처리해야 한다. 송 교수가 참석한 회의에서 논란이 된 것은 감염 위해가 있는 기저귀가 의료폐기물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감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병원 내, 그리고 지역사회의 감염 관리 관점에서 기저귀는 실제 배출에서 처리까지 외부 접촉을 최소화해 소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부가 고시한 일회용 기저귀 분류체계 변경 내용에 따르면 비감염병 환자의 기저귀가 의료폐기물에서는 제외되지만 위생 문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배출·운반 체계는 기존과 동일하다. 최종 처리하는 장소만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 역시 기존 ‘전용 소각장’과 기술적인 사항이 같은 곳에서 소각하므로 보건학적 우려도 없다. 의료폐기물공제조합의 주장대로 기저귀를 의료폐기물로 분류해야 한다는 논리도, 감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타당성을 잃는 셈이다.

당시 송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필자의 시야는 좀 더 넓어졌다. 병원에서 의료폐기물 처리 비용이 왜 급상승하는지. 외국계 자본이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높은 가격에 인수하고 의료폐기물 업체가 수억원을 들여 이런 의미도 없는 연구를 하고자 했는지. 어째서 의료폐기물이 들판과 산속에 방치돼 국민의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후배 의사가 말했다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최고 포식자로 군림하는 의료폐기물 소각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바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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