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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세기말 20년 후, 2019 한국정치

정영현 정치부 차장





창밖을 본다. 경복궁 너머 청와대, 그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 아직 초록이 우세하나 바람은 서늘하다. 가을이다. 가을 가면 겨울, 그리해 2019년이 시나브로 가버리면 2020년이다.

2020년이라니. 어린 시절 만화영화 제목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사이보그, 인간복제, 우주 전쟁…. 온갖 상상이 현실이 되고는 했던 만화 속 세상. 그 정도까지는 아니나 자율주행차·드론·인공지능(AI)·5세대 통신(5G)을 논하는 수준은 됐다.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꽤 놀랍도록 발전시킨 것은 맞다.

정치는 그새 얼마나 진보했을까. 20년 전, 세기말 1999년의 신문들을 한번 들여다봤다.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면마다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그러다 어느 신문의 칼럼 한 대목이 시선을 붙들었다.

‘바깥세상은 꿈틀거리는데, 그리고 우리를 주시하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에만 너무 골몰했다. 4월 총선이 예정된 내년에는 사태가 호전되기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더 높다. 4강 외교도 몇 차례의 정상회담 성공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시련을 안겨줄 소지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불안요인을 갖고 있다…’

20년 전 이야기가 맞나 싶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지 않나.



정치권은 여전히 서로 상처 입히는 데 골몰하고 있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는다면 세기말에는 고사성어를 쓰며 점잖은 척 싸우더니 이제는 신기술에 힘입어 아무나 아무 때나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며 야무지게 서로 상처 입힌다는 거다. 경제 여건 악화에 기업과 가계 속이 타들어 가도 가축 감염병과 태풍이 들이닥쳐도 청년들이 미래를 보여 달라 호소해도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의도 회의실 백드롭과 길거리 피켓 쇼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 학살’ ‘계파 싸움’ ‘이합집산’이라는 고전 영화는 또 재개봉할 것 같다.

4강 외교가 안주할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도 눈에 콕 박힌다. 여전히 북핵은 위협 요인이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 갇혀 있다. 대일관계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내년 미국 대선 후 국제사회가 어찌 변할지 부디 누군가가 미리 따져보고 준비하고 있다면 좋겠다.

20년 전 칼럼은 이리 마무리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선거가 아무리 급해도, 정쟁이 아무리 소용돌이쳐도 그렇다. 내일을 명석하게 내다보고 차분하게 준비하는 정부 당국자와 정치인을 보고 싶다’

그로부터 20년 후 2019년을 사는 나도 말하고 싶다. 그런 정부 당국자와 정치인을 보고 싶다고. 그리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20년 전 칼럼의 주인을 비롯해 2019년 정부 당국과 정치권을 이끌고 계신 분들께. 20년 후 2039년의 누군가가 오늘의 나처럼 20년 전을 돌아보고는 너무 닮았다고 놀라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해달라고. 또 그리되면 너무 참담하지 않겠나.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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