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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 법도 없이 고법부장 폐지 강행… '대법원장의 위법' 논란

현행법은 2심 재판장 고법 부장만 가능한데

金, 법 개정 전부터 '직무대리' 인사로 채워

'위법·위헌 재판' 빌미 줘 사법불신 우려

법원 내부서도 '승진 직무유기' 논란 가능성

국회 무관심에 임기 말까지 문제될 수도

“법관은 승진이나 중요 보직 또는 일신의 안락함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승진 등을 바라보고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법관이 국민을 바라보면서 ‘좋은 재판’을 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법관을 승진에 길들이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는 반드시, 완전히 폐지돼야 하고 저는 이를 위한 법률 개정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제5회 법원의 날’ 행사장. 김명수 대법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고법 부장 승진 제도를 ‘법관을 길들이는 통로’라고 혹평하며 폐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최근 사법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차관급인 고법 부장 폐지가 사법 개혁의 중요한 일축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 것이다.

고법 부장 폐지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의지 표명은 16일 광주 전남대 법학전문학원에서 열린 특강에서도 이어졌다. 김 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관료제의 가장 큰 것이 승진인데 고법 부장 폐지를 제일 먼저 약속했고 관련 법안이 올라가 있지만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되고 있다”며 “관료제 타파를 위해 승진제도 폐지 등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2019년에 이어 내년 2월에도 고법 부장 승진 인사가 없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의 선제 대응은 현 법원조직법에 반하는 ‘위법성 조치’라는 주장이 법조계 전반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 법 개정도 전에 고법 부장 자리를 ‘직무대리’로만 채우는 건 대법원장의 직무유기이자 사법불신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법원 자체 개혁안이 국회에서 무기한 방치되면서 법적 근거도 없이 승진을 가로막는 김 대법원장의 섣부른 고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는 분위기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제5회 법원의 날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 개정도 없이 폐지 강행… ‘위법 논란’ 확산=고법 부장 폐지는 김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취임 후 가장 먼저 추진한 사법개혁 과업이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7년 11월 고법 부장 승진제를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약속한 뒤 이듬해 2월 정기 인사에서 실제 고법 부장 신규 보임을 중단했다. 대신 ‘직무대리’라는 이름으로 인사를 내 그 자리를 채웠다.

당시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도 불거지기 전이었다. 고법 부장 폐지는 외부 여론이나 정치권의 압박과 무관하게 오롯이 김 대법원장의 의지만으로 추진된 개혁이었다.

김 대법원장의 기조는 올 2월에도 이어져 이제 전체 고법 부장 직무대리 판사 수만 13명에 이르게 됐다. 이미 고법 부장급(3월5일 대법원규칙 기준)으로 승진한 137명의 10%에 달하는 수치다.

문제는 법 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곪아 터졌다. 막연하게 국회에서 법원조직법을 곧 개정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서둘렀다가 현행법을 계속 어기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현 법원조직법 27조 2항은 ‘(고등법원) 부에 부장판사를 둔다’고 돼 있고, 27조 3항에는 ‘부장판사는 그 부의 재판에서 재판장이 되며 고등법원장의 지휘에 따라 그 부의 사무를 감독한다’고 돼 있다. 여전히 법률적으로는 직무대리가 아닌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야 한다.

법조인들은 이 때문에 앞으로 직무대리 재판장에게 2심 재판을 받은 국민들 중 상당수가 “위법한 재판을 받았다”며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직무대리 2심 재판장의 위법성을 헌법재판소에서도 다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법률 26조 4항에는 ‘고등법원장이 궐위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수석부장판사, 선임부장판사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돼 있어 향후 고등법원 운영에도 심각한 혼란이 나타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판사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지금처럼 법에도 없는 방침을 밀어붙일 경우 법원 내부에서도 ‘대법원장이 이유 없이 승진을 지체한다’며 직무유기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문제가 있다고 법도 개정하기 전에 제도 자체를 없앤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답답해 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승진 제도 자체가 문제인지 아니면 이를 악용하는 게 문제인지 여부부터 따졌어야 했다”며 “승진도 판사들에게는 중요한 동기 부여 요소인데 잘하든 못하든 똑같이 대우하면 도대체 어떤 판사가 열심히 재판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법원장의 직무대리 지정을 규정한 법원조직법 6조가 김 대법원장의 방패막이가 될 수는 있다. 법원조직법 6조 1항은 ‘대법원장은 판사로 하여금 다른 고등법원·특허법원·지방법원·가정법원·행정법원·회생법원의 판사의 직무를 대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6조 2항은 ‘고등법원장 또는 지방법원장은 그 관할구역으로 한정해 판사로 하여금 직무대리를 하게 할 수 있고 대리 기간이 6개월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대법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다만 이 역시 합법적으로 현존하는 고법 부장 직급을 다른 판사로 마냥 대체할 수 있는 근거는 안 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 의견이다.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처음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무관심에 ‘직무대리’ 한없이 누적 우려=고법 부장 존폐 논란을 해결할 방법은 지금으로선 두 가지다. 첫째는 20대 국회가 올 연말까지 김 대법원장이 지지하는 폐지안을 전향적으로 통과시켜 주는 방법이다. 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당장 내년 2월 법관 정기 인사부터 김 대법원장의 부담은 확 줄어든다.

문제는 이 같은 가능성이 거의 ‘제로’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이후 사법부 개혁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확 식으면서 정치권의 이목은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포함된 안건들에만 집중됐다. 더욱이 조국 법무부 장관 논란 이후로는 ‘사법개혁’을 엉뚱하게도 ‘검찰개혁’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국민들도 많아진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해 12월12일 법원이 제출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10개월째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이달 ‘사법행정자문회의 출범’이라는 고육책까지 꺼내 들었지만 이에 대한 여론은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고법 부장 폐지를 비롯한 각종 법원조직법 개정안들이 내년 4월 총선 뒤 21대 국회로 넘어간다고 해서 곧바로 처리될 공산도 매우 작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의 날이든 사법행정자문회의 출범이든 대법원장이 뭘 해도 조 장관 사태 때문에 어느 국민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고법 부장 폐지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은 법원 내부에도 전혀 없다”고 전했다.



두 번째 방법은 김 대법원장 스스로 고법 부장 폐지를 잠정 연기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해당 조치를 처음부터 꺼내 들고 강행한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김 대법원장의 최근 발언과 행보 또한 이와 전혀 무관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결국 어정쩡한 고법 부장 직무대리가 김 대법원장 임기 말까지 한없이 늘어나기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법 위반 논란, 판사들의 반발 등이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논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진단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원로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에 대해 정무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고 지극히 법관의 시각으로만 접근한 것 같다”며 “사법부는 권한이 적어 무언가를 하려면 국회, 기획재정부 등의 협조가 필수인데 관계 기관 협의도 없이 독립된 판단을 하겠다며 일의 앞뒤를 잘못 파악한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한 현직 고법 부장판사는 “직무대리라는 이름으로 재판장을 맡는 건 판사들도 불안한 일”이라며 “법원이 법에 엄연히 나와 있는 걸 계속 지키지 않으면 일반 국민들도 이상하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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