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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집은 누가 지키나

한기석 논설위원

기업은 외국서 투자해 공장 짓고

사람은 한국 살기어렵다며 이민

다 밖으로만 돌면 경제 살아날까

기업이 돈 쓸 환경 다시 만들어야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달 20억달러를 들여 미국에 자율주행 합작법인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미국이었다. ‘20억달러면 연간 30만대 차량을 생산하는 공장 2곳을 지을 수 있다는데. 그렇게 큰돈 있으면 한국에나 투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차가 최근 투자한 곳을 보면 모두 한국 밖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동남아시아 최대 카헤일링(호출형 차량공유서비스) 기업인 그랩에 2억7,500만달러를 투자했고 올 3월에는 인도의 1위 카헤일링업체 올라에 3억달러를 넣었다. 미국의 모빌리티 플랫폼업체인 미고와 호주의 카넥스트도어에도 베팅했다.

현대차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에는 기업이 투자한다면 대상은 무조건 외국이다. 인수합병(M&A)을 해도 외국 기업이요, 공장을 지어도 외국에 짓는다. 5월 거의 모든 언론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사진이 실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국내 대기업 총수를 면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부연설명이 붙었다. 이 사진을 한 장 찍는 데 31억달러가 들었다. 롯데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31억달러를 들여 롯데케미칼 석유화학공장을 지었고 트럼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국기업으로부터의 최대 규모 대미 투자며, 미국민을 위한 일자리 수천개를 만들었다”며 고마워했다.

누군가 이 정도 투자를 한국에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로 초청해 고맙다고 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현대차의 미국 합작법인 투자가 한미동맹을 더욱 든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렇게 말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업의 해외투자 추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2·4분기 해외직접투자는 150억1,000만달러로 1·4분기에 이어 사상 최대기록을 경신했다. 반대로 상반기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1년 전보다 45.2% 줄었다.



요즘에는 사람도 밖으로 나간다. 지금쯤 마지막 열기가 한창일 것 같다. 미국 투자이민설명회 얘기다. 미국에는 미국인이 투자하기에는 조금 위험한 부동산·금융 등 사업에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고 영주권을 부여하는 투자이민제도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하려면 50만달러가 필요한데 이 금액이 11월21일부터는 90만 달러로 오른다. 지난 몇 개월간 서울, 특히 강남 일대 호텔에는 수없이 많은 투자이민설명회가 열렸고 그때마다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투자이민 상담의 주 고객층은 자식을 유학 보냈거나 보낼 계획이 있는 40~50대 장년층이다. 취업 걱정이 많은 20대도 있고 상속세를 내기 아까워하는 60~70대 노년층도 많다고 한다. 결국 젊은이건 어르신이건 한국에 사는 것이 불편해 덜 불편한 곳으로 미국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돈이라도 있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돈 없는 사람만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남는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기업도 사람도 밖으로만 돌면 집은 누가 지키나. 지금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경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수출이 안 되면 내수라도 꾸려가야 할 텐데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사람이 소비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내수가 살아날까. 이렇게 어려울 때는 국가가 재정을 푸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재정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과 사람이 세금을 안 내는데 무슨 수로 곳간이 풍성해지겠는가.

집주인을 탓할 것은 아니다. 집주인은 달래야지 혼낼 상대가 아니다. 사람과 기업 가운데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기업이다. 사람은 아무리 당근을 줘도 소비를 많이 늘리지는 못한다. 생존과 안전을 위해 쓸 돈도 없는 사람에게 소비는 사치에 가깝다. 결국 남는 것은 기업이다. 말썽도 많이 피웠지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금고 저 안쪽에 넣어둔 돈으로 우리나라에서 멋진 사업 일으켜 직원을 많이 뽑고 임금을 많이 주는 그런 일 해보라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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