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기업들의 활력이 현 정부 들어 눈에 띄게 저하되면서 경영 활동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단기간에 강화된 각종 노동 관련 정책에 따른 비용에 허덕이면서 해외로 눈길을 돌려 투자가 국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도 줄고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 상위 20개 기업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가율은 지난 2017년 9.1%에서 올해 -1.1%로 떨어졌다. 2014~2019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이 집계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486개의 전체 매출 증가율이 같은 기간 6.3%에서 0.3%로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낙폭이 크다.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의 매출 합계가 124조5,298억원에서 121조7,375억원으로 2.2% 감소한 영향이 컸다.
올해 상반기 매출 상위 20개 기업 중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곳은 삼성전자(-8.8%), SK하이닉스(-30.7%), 한국전력공사(-2.5%), 한국가스공사(-1.8%), 삼성물산(-0.5%), LG디스플레이(-0.5%) 6개에 달했다. 전체 486개 중 전년 동기 대비 상반기 매출이 줄어든 기업 수는 2015년 318개에서 2017년 226개로 줄었다가 2018년 281개, 올해 293개로 다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 상위 20개 기업의 총자산 회전율 역시 35.2%에서 32.1%로 줄어들어 37.7%에서 34%로 감소한 전체 기업의 총자산 회전율보다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러한 대기업의 성장·활력 둔화는 국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진단이 나온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계획된 투자를 보류하거나 국내 대신 해외 투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대기업의 국내 투자 감소는 매출 증가의 둔화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소비 여력 감소를 초래하고 그렇게 되면 기업은 국내 투자·일자리를 더 줄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업의 해외 투자는 급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2·4분기 해외직접투자(FDI)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3.3% 증가한 150억1,000만달러를 기록해 1·4분기(141억1,000만달러)에 이어 분기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반도체 업황 둔화,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변수 외에도 현 정부 들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이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전문가 및 재계의 지적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주 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 인상이 꼽힌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제품·서비스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했고 그 결과가 매출 증가율 둔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출 증가율 둔화의 주요 원인이 수요 자체의 감소 또는 가격·품질 경쟁력 저하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에 각종 비용 증가의 충격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주 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지침)’를 앞세운 지배구조 개선 압박도 주요 기업들의 배당 확대 등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재계에서는 현 정부의 정책을 기업들의 활동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는 현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해 경제는 뒷전으로 여긴다고 보거나 경제·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라며 “특히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에 따라 늘어나게 될 인건비도 문제지만 특정 기간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바이오·게임 업종에서는 어떻게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난감하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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