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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80년대 수습한 ‘韓외교 거목’…노신영 전 국무총리 별세

고시출신 외교관으로 외무장관에

5共때 한미관계 정상화·日경협 주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발탁하기도





‘한국 외교의 거목’ 노신영(사진) 전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노 전 국무총리는 제5공화국 국정의 최전선에서 섰던 인물이다. 정통 외교관 출신인 고인은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끈 신군부의 부름으로 발탁돼 외무장관(1980∼1982년), 국가안전기획부장(1982∼1985년), 국무총리(1985∼1987년)를 역임하며 한국 외교·안보사에 한 획을 그었다.

고시 출신 외교관으로 첫 외무장관에 오른 고인은 정통성 시비에 휩싸인 신군부 정권과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의 관계 정상화를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석방됐다. 1983년에는 일본과 한일협정 체결 후 최대인 40억달러의 경협자금 협상을 타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과 첫 공식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한 중국 여객기 불시착 사건, 사할린 상공에서 발생한 소련기에 의한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도 모두 고인이 수습을 주도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발탁한 것도 그의 혜안이었다. 고인은 1973년대 초대 주인도 대사로 부임하며 반 총장을 서기관으로 데려갔고 1985년 총리 취임 때는 미국 연수 중이던 그를 초고속 승진시켜 총리실 의전비서관에 임명했다.



고인은 18대 국무총리에 오르면서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이른바 ‘노-노 체제’를 이루는 등 5공 정권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지만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공직을 떠났다.

그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복지·장학사업에 몰두했다.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직접 자택에 전화를 걸어 재단을 맡아달라고 수차례 설득했다고 한다.

1930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세 때 단신으로 월남했다. 고구마 장사를 하며 고학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대학교 3학년 때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입대를 해서도 공부에 전념해 1953년 고시 행정과 3부(외교)에 합격했다. 함경도 함흥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 동기생인 부인 김정숙씨와 1954년 결혼해 3남 2녀를 뒀다.

노 전 총리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5일이며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이다.
/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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