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지털 쇼룸인 ‘한성자동차 강남 자곡 전시장’. 모델 핏을 방불케 하는 30~40대 네오 그루밍족 200명이 한데 모였습니다. 롯데백화점과 벤츠가 손잡고 개최한 ‘노블 옴므 파티’. 여기에 모인 멋남들은 롯데백화점에서 연간 명품만 1억원 이상 소비하는 3040 남성 우수 고객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스타일링만 분석해도 최신 남성 패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그들은 초초초 멋쟁이였습니다. 패션과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은 공통점을 갖고 모인 뉴페이스들은 명품 브랜드의 신상 패션, 새롭게 꽂힌 시계, 끌리는 IT 기기, 그림, 오디오 등에 대한 따끈한 정보를 공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10여 개의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가 쇼룸을 구성하고 그 자리에서 직접 판매가 이뤄졌는데요. 젊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IWC와 여성에게 먼저 어필을 시작해 점차 남성 고객층을 늘리고 있는 피아제와 같은 럭셔리 시계를 비롯해 한국 남성들이 최애하는 톰 브라운, 이태리 명품 원단 브랜드 로로피아나 등이 진을 치고 소비 파워를 가진 네오 그루밍족을 유혹하는데 혈안이 됐답니다. 고급 명품 브랜드를 소개하는 ‘럭셔리 워치&패션 옴므 스토리 토크쇼’를 듣는 남성들의 눈은 반짝였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수도 없이 박힌 6,000만원 짜리 피아제 시계가 멋드러진 40대 남성의 팔목에 채워졌지요.
◇그루밍족의 진화…뷰티에서 라이프스타일로 영역 확대=2010년대 중반 등장한 그루밍족은 ‘꽃보다 중년’을 지칭하는 피부 관리 좀 한다는 영포티를 떠올리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그루밍족의 연령대가 심지어 20대까지 내려오면서 젊음과 소비 파워를 갖춘 30~40대 네오 그루밍족이 한국 남성 패션·뷰티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외모를 경쟁력으로 생각하며 자기 투자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있지 않으면서 페스티벌과 마라톤 행사에 직접 참여하며 라이프스타일까지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거죠. 얼마 전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실제 30대 남성 응답자의 42.2%가 스스로를 그루밍족이라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네오 그루밍족은 가성비를 따지는 것보다 지극히 개취(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쓴다”며 “가격 비교 따위는 없는 것이 새로 나타난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남성 소비 무게 중심 ‘아내-->나’로 이동=남성들이 정말 자신만을 위해 지갑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남성들은 특성상 꽂히면 한 퀴에 지릅니다. 크게 오래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 소비 파워는 실로 강력하고 파급력이 높은 탓에 지금과 같은 불황에 유통업체나 브랜드들에게 남성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습니다.
몇 년 전 만 해도 남성들의 쇼핑 스트레스 지수가 전쟁에서 느낄 만큼 높다고 할 정도로 쇼핑은 남성과 가장 거리가 먼 항목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스스로 외모를 경쟁력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그루밍족이라고 칭하는 3040 남성들이 늘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롯데백화점이 분석한 남성 MVG 고객의 구매 품목 순위가 몇 년 사이에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롯데백화점이 빅데이터를 돌린 결과 2016년 남성 MVG 고객의 품목 순위는 1위 가전, 2위 여성캐릭터의류, 3위 영캐릭터 의류, 4위 레져, 5위 가구였지요. 그러나 지난해 1위 가전, 2위 골프, 3위 기초화장, 4위 레져, 5위 해외시계로 확 바뀌었습니다. 2016년에는 2, 3위가 여성 의류로 남편 카드를 가진 주부들의 쇼핑 품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2018년에는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남성 자신을 위한 쇼핑이라는 점입니다. 3위 기초화장도 남성 화장품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아내의 화장품과 더불어 자신을 위한 뷰티 제품을 사는 것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거죠.
◇3040 남성 잡아야 산다=이제 유통업체나 브랜드들은 하나를 사는 데도 고민을 많이 하는 까다로운 여성 소비자 보다 꾸미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이제 믿기 시작해 일단 상대적으로 잘 지르는 쇼핑 초심자를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난해 갤러리아백화점의 명품남성 상품군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32% 신장했습니다. 올 상반기도 역시 두 자릿수 이상 증가했지요.
이로써 3040 남성을 겨냥한 팝업 행사나 전문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2월에는 롯데백화점이 1층에서 IWC 신상품 11종을 팝업 형태로 선보였고 지난 8월에는 이례적으로 지하 1층에 펜디 남성 콜렉션 팝업 행사를 진행했죠.
명품 브랜드는 갈수록 남성, 여성으로 분리되고 있습니다. 남성들도 슈즈, 액세서리, 의류, 가방까지 전 라인에 걸쳐 ‘우리’만을 위한 다양한 품목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갤러리아백화점은 기존 이스트 4층의 명품남성 브랜드인 루이비통·구찌·벨루티 등을 웨스트로 이동해 12월부터 순차적으로 오픈합니다. 펜디 남성도 새로 문을 연다고 하네요. 기존 웨스트 공간은 남성들이 좋아하는 편집 매장 확대와 신규 브랜드로 채워집니다. 요즘 2,400만원짜리 스웨터코트와 로퍼로 인기가 급상승한 로로피아나도 이스트 입점을 앞두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가방·의류·슈즈’ 명품 3인방=백화점에서는 요즘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 인기일까요. 잡화에서는 오프화이트의 수석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터치가 가미된 루이비통 가방의 판매율이 높답니다. 그 중에서도 루이비통 고유의 모노그램 패턴이 새겨진 에띠보야주, 포쉐트 보야주 이클립스 클러치 모델이 인기가 많습니다. 의류는 구찌가 꼽힙니다. 여성들이 구찌 가방을 선호하는 반면 남성들은 의류를 많이 사는군요. 간절기 아우터 아이템 판매율이 높은데요, GG로고 패턴의 자카드 재킷, 패딩 및 클래식한 패턴을 위트있게 해석한 싱글코트가 잘 팔리고 있습니다. 슈즈는 여전히 발렌시아가네요. 삭스슈즈, 어글리슈즈의 트렌드를 리드했던 발렌시아가답게 트리플 S,트랙슈즈 모델이 계속 인기입니다.
◇英 남성 전문 직구 사이트 ‘미스터포터’의 유혹=해외 직구 온라인 사이트가 대부분이 여성을 타깃으로 했다면 육스 네타포르테그룹이 운영하는 ‘미스터포터’는 글로벌 온라인 남성 편집숍입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 시장의 매출은 80% 상승했고, 새로운 한국 남성 고객은 75%나 증가했습니다. 아시아권에서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 매출 2위를 차지하고 있죠. 미스터포터에서는 오프화이트, 발렌시아가 등 스트리트 브랜드와 톰포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볼리올리 등 클래식한 테일러링 브랜드가 양 극단에서 매출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미스터포터 한국 남성 선호 브랜드 5위에는 발렌시아가, 나이키, 스톤 아일랜드, 아크네 스튜디오, 메종 키츠네가 순서대로 올라와 있지요. 아울러 스니커즈, 티셔츠, 스포츠의류, 코트와 재킷, 캐주얼 셔츠 순으로 20~40대 한국 남성들이 많이 찾는다 합니다. 특히 현재 한국에서 판매율이 가장 높은 제품은 나이키X언더커버 데이브레이크 스니커즈와 파타고니아 P-6 로고 저지 티셔츠라고 하는군요. 지난 9월에는 두 거장이 손잡은 한정판 ‘오프화이트X언더커버’가 사흘 만에 완판됐으며 500만~1,000만원대인 톰포드 익스클루시브 콜렉션도 출시 하루 만에 80% 이상이 판매됐답니다.
◇네오 그루밍족의 새로운 항목은 ‘수고&디테일’=네오 그루밍족은 수고를 들이더라도 자신만의 취향과 향유를 위한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습니다. 맞춤 셔츠를 비롯해 몸에 감기듯 떨어지는 맞춤 수트인 비스포크를 찾는 젊은 층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세계백화점 편집숍 분더샵에서 판매 중인 이태리 맞춤 셔츠 브랜드 ‘카미치에’ 역시 가격이 30만원대에도 불구, 30~40대 남성 비중이 60%에 육박하지요. 재구매율 역시 60%가 넘습니다. 원단은 스위스 알루모사의 프리미엄 원단을 사용하는데, 워싱을 할 때 은은한 광택을 내기 위해 알프스 산맥의 물에서 적신다고 합니다. 54개의 샘플 상품을 활용한 맞춤 시뮬레이션 덕분에 얼마 전 셔츠 1장을 맞춰간 50대 남성 고객이 12장을 전화로 주문했다고 하는군요.
신세계백화점의 구두 수선전문점 ‘리페어슈즈’를 찾는 단골 고객도 30~40대가 가장 많답니다. 좋은 구두일수록 앞굽이 빨리 닿기 때문에 앞굽에 스틸토라는 쇠를 덧대고 밑창을 수선해 구두의 수명을 늘린다고 합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갈수록 디테일에 민감하고 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심지어 잘 나가는 비스포크 브랜드의 고객 서비스 담당자가 대부분 30대 초중반”이라고 귀띔합니다.
/생활산업부장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