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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도시] 북한산을 캔버스 삼아...미술관, 또 하나의 작품이 되다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 미술관>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자리잡은 사비나미술관. 삼각 단면에 창이 적은 독특한 외형이지만 5층의 높이에 미색의 고벽돌 마감으로 은평뉴타운의 풍광과 어우러진다. /사진제공=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은 옛 동네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이 깨끗하게 정비된 뉴타운이지만 정겨운 맛이 있다. 북한산 자락을 가리지 않도록 낮게 엎드린 아파트들 사이로 숲의 푸른빛이 새어나온다. 산과 하늘과 고즈넉한 건물, 깨끗이 정비된 길, 여기에 조잘대며 동네를 거니는 아이들까지. 이들이 어울려 서울에서도 단 하나밖에 없을 고유의 풍경을 진관동은 만들어낸다.

사비나미술관은 이런 진관동에 또 다른 멋을 얹어놓았다. 삼각형 대지에 삼각형으로 들어선데다 창문은 거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시원하게 치켜올려진 한쪽 면이 존재감을 내뿜다가도 5층의 나지막한 높이와 미색을 띤 외벽이 북한산 자락의 평온함을 깨지 않는다. 지금의 사비나미술관은 지난해 10월 준공돼 만 한 살이 된 새 건축물이다. 미술관 자체는 건축주인 이명옥 관장이 안국동에서 20여년간 운영하다 은평구로 자리를 옮겨 새로 운영하고 있다. 이 관장이 새 미술관을 짓기로 한 것은 순수예술에 트렌드를 반영한 실험적인 전시를 시도하는 사비나 미술관의 성격상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건축은 그릇을 만드는 일>

설계단계부터 예술 작품이 주인공 되고

작가들 새 도전 수용할 공간 확보 중점

설계를 담당한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의 이상림 대표는 이를 두고 “사비나미술관 건축은 그릇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사비나미술관은 설계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예술 작품이 주인공이 되고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수용할 만한 공간을 만드는 게 설계의 중점이 됐다”며 “삼각형 모양의 땅이라는 조건에서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면서도 미술관이라는 기능을 살리는 것이 주어진 과제였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술관 내부는 역시 부자연스러운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삼각형의 대지 모양에도 불구하고 내부 공간은 넓고 트였다. 비결은 건축적 배치였다. 이 대표는 “통상 삼각형 모양 건축의 경우 가운데 또는 삼각형의 장변 쪽에 계단과 엘리베이터·화장실 등 이른바 ‘코어’가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충분한 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코어를 삼각형 장변의 양 끝, 모서리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사비나미술관의 2층 내부 공간. 전시라는 원래 목적을 위해 건물의 중심을 비워내고 삼각형의 모서리에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을 배치했다. /사진제공=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미완성이 완성으로 존재하는 공간>

삼각 모양에 콘크리트 마감...영감 자극

소나무 조형물 등 건축물과 예술의 결합

공간 내부의 바닥과 벽은 별도의 마감이 없이 콘크리트 자체가 마감이다. 미완성이 그 자체로 완성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 대표는 심지어 노출 인테리어를 구현하는 객장에서 콘크리트 표면의 흠을 감추기 위해 흔히 쓰는 ‘퍼티’ 작업도 되도록 하지 않도록 작업자들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이 같은 미니멀리즘은 전시공간이라는 건축물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예상외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관장은 “통상 미술관은 정방형의 흰색 공간이 대부분인데 삼각형에다 콘크리트 마감된 공간을 제시하니 이를 본 전시작가들이 공간을 재해석하려는 욕구를 느끼는 것 같다”며 “작가들이 새로운 느낌의 전시를 시도하고자 한다”고 했다.



사비나미술관의 진정한 건축적 묘미는 사실 건물 자체를 예술 작품과 결합했다는 점이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미술관을 새로 짓기로 한 순간부터 함께 땅을 고르고 건축을 기획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예술 작품과 결합된 건축물이라는 콘셉트였다.

이런 식이다. 외부와 연결된 1층 주차장 한편에는 금속 소나무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주차장에서 볼 때는 하나의 소나무 조형 예술품이지만 주차장 밖으로 나가 건물을 보면 소나무 조형 위 2층 높이 벽면에 3개의 소나무 가지들이 뻗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선을 좀 더 위로 올리다 보면 건물 옥상 즈음에 동그란 창이 나 있다.

결국 주차장부터 벽면 전체를 바라보면 하늘에 뜬 동그란 달 아래로 소나무가 서 있고 가지가 뻗은 하나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직 작가 이길래의 ‘소나무’라는 작품이다. 특히 3개의 가지가 뻗어나온 곳은 원래 동그란 배관 마감 자국이 남아야 하는 곳이다. 이 대표는 “작가의 의도를 건축으로 구현하기 위해 창 위치는 배관 마감 위치에 맞췄으며 모양은 일부러 동그랗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1층 주차장 한편에 소나무 조형물을 놓고 외벽 배기구가 나오는 곳에 소나무 가지를 설치해 건물 자체를 예술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간건축사사무소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

벽돌 외관에 사색의 글귀...조형 창문...

미술관 곳곳 건물 구조 활용 작품 설치

이외에도 곳곳이 의외의 발견이다. 중국의 고벽돌을 가져와 쌓았다는 미색의 벽돌 외관을 보며 걷다 보니 벽돌 중 곳곳에서 여러 문구가 발견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새겨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문구부터 ‘마음으로 보라’ 등 사색과 통찰의 글귀들이다. 김승영 작가가 사비나미술관의 건축을 위해 공수한 벽돌 중 일부에 직접 글귀를 새긴 설치예술 작품 ‘말의 풍경’이다.

실내에도 있다. 3층에서 4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삼각형 꼭짓점 안쪽으로 두 개의 창이 나 있다. 가까이 가보면 하나는 창 모양의 조명을 걸어둔 것이고 맞은편은 진짜 창이다. 빛을 주제로 다루는 황선태 작가가 인공 빛과 자연 빛의 조화를 구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건축가인 이 대표는 이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설계를 수정해 없던 창을 뚫었다.

외벽 벽돌에 글귀를 새긴 작품 ‘말의 풍경’. /사진제공=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내부 전시장을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두개의 창. 왼쪽은 인공의 창이고 오른쪽은 진짜 창이다. /사진제공=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물을 다 돌아볼 즈음이 되니 이 대표가 사비나 미술관을 두고 ‘그릇’ 또는 ‘배경’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건축 자체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새삼 다가왔다. 사비나미술관은 올해 37회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했다. 이 대표는 “사비나미술관은 관객들의 참여가 점점 중요해지는 예술 전시의 흐름을 반영하고 가변적인 전시를 중요시하는 성격의 미술관”이라며 “미술관의 의도를 담고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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