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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선거 지고도 권력 잡은 히틀러

獨 1932년 두번째 총선

[오늘의 경제소사] 선거 지고도 권력 잡은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위키피디아

33.09%. 세계대공황으로 휘청거리던 시절인 1932년 11월6일 치러진 독일연방 총선에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 얻은 결과다. ‘나치(Nazis)’로 각인된 이 당은 제1당의 지위를 지켰으나 득표율은 약 100일 전 총선의 37.3%보다 떨어졌다. 의석도 230석에서 196석으로 줄었다. 나치는 오랜만에 실패를 맛봤다. 1928년 총선에서 2.6% 득표로 12석(원내 9위당)에 불과한 소수당에서 1930년 총선에서는 18.3%를 얻어 107석을 확보하며 원내 2위당에 올라서고 직전 총선에서는 제1당으로 도약해온 나치의 기세가 지표상으로는 꺾였다.

현실 세상의 권력은 지표와 다르게 흘렀다. 나치는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제도를 갖췄다’는 바이마르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아돌프 히틀러 독재 권력을 다졌다. 유대인을 참혹하게 학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독일의 국토는 폭격으로 황폐해지고 두 조각이 났다. 총선에서 나치를 경계했던 독일 유권자들의 선택과 정반대의 역사가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1932년에 왜 두 차례나 총선이 실시됐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처음 치러진 7월 총선 이후 연립정권이 출범하지 못하자 실시한 게 두 번째 총선이고 히틀러는 거기서 사실상 졌다.

원내 2·3위 당을 차지한 좌파 정당들이 대립하는 동안 혼란은 더 심해지고 패배한 히틀러에게는 오히려 자본가들과 보수우파가 모여들었다. 결국 중립적 성향이 강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1933년 1월 히틀러를 총리 자리에 앉혔다. 의사당 방화 사건을 조작해 좌파 정당을 탄압한 히틀러의 나치는 1933년 3월 총선에서 43.9%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문제는 이때가 마지막 자유선거였다는 점. 수권법을 제정해 다른 정당을 해산시킨 채 나치당에 대한 찬반을 묻는 총선 아닌 총선에서 독일 국민의 92.11%가 지지표를 몰아줬다. 나치에 대한 지지도는 1936년 98.8%, 1938년에는 99.01%로 뛰었다.

독일은 어쩌다 온 국민이 집단광기에 빠졌나. 대규모 재정사업으로 경제를 일으키는 히틀러에게 독일인들은 열광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범행위에서 독일 국민들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까.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일본과 격부터 다르다. 히틀러와 나치의 망상 역시 과거형이 아니라 일본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독일이 수권법을 제정한 것처럼 국민을 속여서라도 평화헌법을 고치자는 우익 정치인이 하나둘이 아니다. 독일의 전철을 일본이 따르지 않으면 좋으련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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