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달궜던 아시아나항공(020560) ‘빅딜’이 HDC현대산업개발의 승리로 마무리 됐다. 2조4,000억원대 인수가격을 제시하며 2조원 미만 가격을 써낸 경쟁자들을 자금력에서 압도한 게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트릴 상황은 아니다. HDC와 파트너인 미래에셋대우증권 경영진 모두 바짝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루 아침에 회사의 DNA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주 구성이나 자회사 매각 등 중대 변수도 여전히 남아 있다.
①확 낮아진 재무부담= 이번 인수합병(M&A)의 최대 장점은 아시아나가 재무 측면에서 ‘굿컴퍼니’로 변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900%에 육박하던 부채비율이 200%대로 낮아진다. 2조원에 달하는 자본확충으로 재무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것이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아시아나의 부채비율은 660%다. 올해부터 회계기준 변경으로 항공기 운용리스가 부채로 잡히면서 1·4분기 부채비율이 895%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아시아나 영구 전환사채(CB)를 인수 방식으로 5,000억원을 긴급수혈해 ‘한시적’으로 낮아진 바 있다. 유상증자 단행 이후 자본이 3조원까지 뛰어 오르면 상반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지금의 절반 수준인 315%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금리 부담도 감경된다. 현재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을 ‘BBB-’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상 디폴트(부도) 등급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는 정상적 채권 발행도 어렵지만 채권을 발행해도 3년물 기준 8%대 고금리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HDC 자회사로 편입되고 부채비율을 낮추면 단숨에 자금 조달 금리가 낮아진다. 시장에서는 대한항공과 비슷한 3%대(3년물 기준)로 금리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②HDC-미래 협업 언제까지= HDC와 미래에셋의 ‘동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미래에셋은 이번 딜에 단순 재무적투자자(FI)가 아닌 사실상 준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했다. 자기자본(PI)을 투자해 아시아나 지분을 최대 20% 수준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에도 이미 이 같은 계획을 딜 초기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HDC에 이은 2대 주주로 회사 경영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 조원 규모의 호텔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관광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항공업은 관광 거점을 잇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정몽규 HDC 회장과 박 회장이 의기투합해 대어를 낚는데 성공했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며 “이때 미래에셋이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를 택할 경우 잡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 아시아나 2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11.12%)의 움직임도 관심이다. HDC가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가운데 금호석화도 구주에 해당하는 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지분 비중이 3%대 미만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석화는 아시아나 딜 초기부터 “회사 인수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최소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경우 아시아나는 3개 대기업이 경영에 목소리를 내는 구조가 된다.
③에어부산(298690), 아시아나 떠날까= 자회사 매각도 아시아나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 변수다. 일단 법적으로는 에어부산, 아시아나IDT(267850) 등 아시아나의 자회사 매각이 불가피하다. 아시아나는 지주사인 HDC의 손자회사가 되는데 공정거래법에 따라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탓이다. 아시아나는 에어부산과 아시아나IDT 지분을 각각 44.17%, 76.22%씩 들고 있다.
선택지는 크게 나눠 2가지다. 일단 이 회사들을 매각하는 방안이 있다. 특히 알짜 기업인 에어부산에 대한 시장 수요가 클 것으로 보인다. HDC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도 아시아나 인수 이후 자회사를 팔아 치우는 방안을 마련했었다. 유상증자에 1조원 안팎을 투입해 일단 급한 불을 모두 끈 뒤 자회사를 팔아 투자금을 추가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번 딜에 참여한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HDC는 2조원을 한꺼번에 쏠 여유가 있었던 만큼 당장 자회사를 매각하지는 않겠지만 내부 경영합리화 과정에서 언제든 필요없는 회사가 매물로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정거래법은 증손회사 지분율 충족에 2년의 기간을 두고 있어 이 사이에 전략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증손회사인 에어부산 등을 지주사인 HDC가 사들여 자회사로 전환하는 방안도 있다. 이 경우 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회사 매각은 언제든 가능해 자회사 분리 매각 이슈는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서일범·김상훈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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