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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피그말리온의 빛과 그림자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신화의 상징

때론 사랑으로 포장 과도한 기대

자녀를 끊임없는 경쟁체제 내몰아

아이 스스로 원하는 것 찾게해야

정여울 작가






친구가 경쟁자로 보이고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져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급증하는 요즘. 나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신화의 상징 ‘피그말리온 효과’를 의심하고 있다. 부모의 기대 때문에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마치 피그말리온 신화의 조각상 갈라테이아처럼 ‘과도한 기대의 대상’이 되는 느낌이다. 더 많이 칭찬해주고 더 많이 기대해주면, 아이들은 정말 더 훌륭한 존재가 되는 걸까. 마치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의 소원처럼, 조각상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기적처럼! 그런데 조각상 갈라테이아 입장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란 곧 피그말리온의 이기심이 아니었을까. 갈라테이아의 시선에서 보면 피그말리온은 처음 보는 남자인데,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을 조각상으로 만든 그 남자를 단지 그가 자신의 창조주라는 이유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피그말리온 효과는 ‘누가 내 변신을 간절히 원하는가’라는 욕망의 주체를 숨기고 있는 반쪽짜리 신화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억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은 저마다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내면화한다.

내가 인문학 강연 중에 ‘조각상 갈라테이아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자 질문이 날아왔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원래 좋은 것 아닌가요?” 물론 그렇다. 하지만 ‘누구의 입장에서 좋은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 신화는 철저히 피그말리온의 입장에서만 유리한 것이다. 부모와 자식, 나아가 세상 모든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오직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려는 무리한 의지가 혹시 조각상 갈라테이아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닌지, 피그말리온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피그말리온은 현실 속의 여성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지닌 존재다. 피그말리온의 치명적 결점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형만을 사랑한다는 것, 즉 대상의 생생한 실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억지로 투사한다는 점이다.



아이는 의사가 되길 원하지 않는데 부모가 의사가 되라고 강요하며 학원을 열 개씩 보낸다면, 그 부모는 피그말리온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것이다. 내가 빚어낸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너는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너는 내 의지와 기획대로 자라야 한다는 강박이 아이들의 아이다움과 자기결정권을 빼앗아 간다. 장기적으로는 부모에게도 결코 이익이 아니다. 아이 가슴에는 ‘부모가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원망이 쌓일 것이고, 그 아이가 의사나 변호사가 된다 해도 ‘나는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아니다’는 절망감에 부모를 증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게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사랑은 결코 손익분기점을 따지는 투자가 아니며,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해 그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려는 이기심은 결국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이 언젠가 탄로 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독자가 고민을 알려왔다. “제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부모님이 제게 투자한 교육비에 걸맞은 성공을 하지 못하면, 저를 결코 사랑해 주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부모님이 원하는 그런 성공을 결코 해 낼 수 없어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쓰려 왔다. 나 또한 그런 공포를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못한다면, 내가 부모님이 원하는 길로 가지 못한다면,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끔찍한 두려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 ‘부모의 기대’와 ‘부모의 사랑’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뒤가 구분되지 않아 우리는 어느 것이 사랑인지 어느 것이 기대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랑의 이름으로 내 이기심을 포장하지 않기, 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 것을 너에게 강요하지 않기.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첫걸음이다. 당신의 결핍과 그림자까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 그가 진정한 영혼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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