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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창]규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근본 대책이 아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오랜 기간 금융기관에 근무하다 보면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필자는 대우그룹 회사채 펀드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눈물을 흘리던 투자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난 2013년 동양그룹이 문을 닫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동양증권이 팔았던 그룹 회사채에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봤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 사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원화 강세가 불편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2005~2006년에 많이 판매됐던 키코 상품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원화 가치 급락으로 기업들에 큰 손실을 안겼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이후에도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도 몇 개의 비슷한 사태가 터졌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도 그중 하나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에 투자했다가 독일 등 주요국 금리가 크게 떨어지고, 장단기 금리 차이가 역전되면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생긴 것이다. 최근 들어 금리가 올라 원금을 회복한 투자자들도 생겼지만, 이미 만기가 도래한 투자자의 경우 큰 손실을 봤다. 그런가 하면 모 자산운용사가 유동성 없는 기초자산을 대상으로 언제든 환매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팔고 문제가 생기자 환매를 연기해버린 일도 생겼다.

이런 사태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선택한 방법은 보통 운용기관과 판매자에 대한 규제 강화였다. 규제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판매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해당 상품의 위험과 수익구조를 충실하게 설명해야 하는 각종 의무를 지우는 형태다. 또 하나는 특정 상품, 특히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공모로 판매되는 상품의 경우 운용자에게 편입할 수 있는 자산의 종류와 운용 전략에 제한을 두는 형태다. 실제로 이러한 규제는 금융상품을 만들고 파는 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은 사태들을 막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투자자들의 금융지식이다. 내가 사려고 하는 금융상품이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금융지식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규제는 사고를 예방하는 데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금융상품과 환경이 점점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상품에 투자할 때 작성해야 하는 수많은 서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판매자와 투자자에게 부과된 의무는 이미 충분하다. 판매자가 실적 부담이나 욕심 때문에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근본적으로 더 큰 잘못이지만, 투자자가 막연한 믿음이나 욕심으로 투자상품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않는 관행이 이어지면 금융상품 투자와 관련된 ‘사태’는 계속될 것이다.

이번 DLF 사태나 모 자산운용사 환매 연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일단 규제다. 이달 14일 금융위원회는 은행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난도 금융투자 상품’을 판매하는 데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특정 금융권에서 특정 상품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근본 대책일 수 없다. 투자자의 금융지식이 그대로라면 문제는 또 다른 형태로 등장할 다른 금융권의 상품에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규제는 금융상품의 스펙트럼을 줄이고,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을 이동시킬 가능성도 크다. 투자자의 금융지식을 끌어올리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투자자를 지키는 근본적인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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