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동물을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개선하자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헌법에 동물권이나 동물보호에 관한 조항을 만들고, 동물의 법상 지위를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바꾸자는 취지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동물에 관련한 언급이 별도로 없고 민법에서는 동물을 생명 없는 물건(유체물)과 동일하게 취급(제98조)한다.
그동안 동물권을 위한 법제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26일 발의한 대통령 개헌안 제38조 제3항에는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도 지난해 3월 민법 98조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별도의 법률이 보호되는 한도 내에서 이 법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민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다만 헌법 개정과 법령 제정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이에 동물권 단체 ‘케어’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민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앞선 주장들은 이미 해외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독일은 동물보호에 관한 조항을 헌법에 넣은 대표적인 국가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독일의 동물보호법제에 관한 고찰(2017)’에 따르면 독일은 2002년 연방기본법의 환경보호 조항인 제20조a에 동물보호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정했다. 이에 따라 “국가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책임감을 지니고 자연스러운 생활환경과 동물들을 헌법에 적합한 질서의 범위 내에서 입법을 통하여 또는 법률 및 법의 기준에 따라 행정부와 사법부를 통해 보호해야 한다”는 현행 조항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국가가 동물을 불필요한 고통과 상해로부터 보호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생겨났다. 이는 의회에 동물보호를 위한 법률을 입법해야 하는 헌법적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동물 학대 방지 등의 소극적 입법 의무만이 아니라 동물복지 개선을 위한 적극적 입법 의무도 포함된다고 본다. 만약 국회에서 동물보호법령이 입법되면 헌법규정은 행정과 재판의 준거가 된다. 즉 집행작용과 사법작용을 통해서도 동물보호에 대한 국가적 의무가 발생하는 셈이다.
또 해외에서는 동물의 지위를 물건이 아닌 것으로 바꾼 곳이 많다. 한국과 달리 권리의 주체인 인간, 권리의 객체인 물건, 그리고 생명을 지닌 동물로 3원화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내용을 최초로 민법전에 신설한 국가로, 1988년 3월10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하여 보호된다. 물건에 관한 규정들은 유사한 규정들이 존재하지 않는 때에 한하여 동물에 대해 적용한다(제285조a).’고 민법을 개정했다.
독일은 1990년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하여 보호된다. 동물에 대하여 특별한 정함이 없는 한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제90조a).’는 조항을 넣었다. 프랑스는 2015년 민법 제515-14조에 ‘동물은 감성을 지닌 생명체이다. 동물을 보호하는 법률의 유보하에 동물은 재산법제에 따른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한국에도 이같이 동물을 물건에서 제외하면 동물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등 손해배상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는 손해배상액이 동물의 구입가격이나 시가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주인이 사망할 경우 남겨진 반려동물의 돌봄을 위한 신탁제도를 법제화할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를 위해 참고할 만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현재 모든 주에서 반려동물에게 신탁을 이용해 유산을 남길 수 있다. 1969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반려동물보호신탁을 주법으로 제정했으며 2016년 미네소타를 마지막으로 전 주에서 법제화를 완료했다.
조성자 강원대 교수의 논문 ‘미국 반려동물 보호법제와 시사점 - 미국 반려동물신탁 제도를 중심으로(2018)’에 따르면 미국의 반려동물신탁은 반려동물 주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생명보험을 들고, 자신의 사후에 받게 되는 생명보험금을 반려동물신탁 자금으로 쓰도록 하는 방식이다.
주인은 반려동물신탁 개설자로서 자신의 반려동물을 보살필 사람을 수탁자로 지정하고, 자신이 남긴 신탁금을 가지고 어떻게 신탁의 수혜자인 자신의 반려동물을 보살필지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내릴 수 있다. 신탁자는 반려동물을 보살필 사람과 수탁자를 동일한 사람으로 지정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통상 수탁자는 변호사들이 맡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사람과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조 교수는 논문에서 “반려동물 인구가 증가하면서 유언으로 반려동물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증가할 것이고, 그럴 경우 이런 유언·유산을 둘러싼 법적인 분쟁도 증가할 것”이라며 “예상되는 법적 분쟁의 방지를 위한 반려동물보호신탁의 입법화를 비롯한 기타 법적 장치 마련은 동물보호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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