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역사공원과 역사박물관이 들어선 자리는 조선 시대 400여 년간 국사범의 처형장으로 쓰이던 장소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수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된 바 있다. 천주교 순교의 장소이면서 한국 근대사의 일면이 새겨진 상징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들어 지역 주민들의 휴게를 위한 근린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됐지만,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로 인해 접근로가 차단되고 주변에 재활용쓰레기 처리장 등이 들어서면서 ‘음지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서울시 중구는 이처럼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면서도 ‘잊혀진 공간’이 돼버린 이곳을 추모공간과 전시기념관을 담은 역사박물관·공원으로 재정립하기로 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역사적 의미가 깃든 곳에 진정한 의미를 담고자 했다. 종교적 공간이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큰 곳인 만큼 천주교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설계 공모에는 296팀이 경쟁을 벌였는데 윤승현·이규상·우준승 건축가가 팀을 이룬 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됐다. 설계의 첫 시작은 공원이었다. 공원은 숲으로 감싸 안과 밖 구분을 만들었다. 채워진 숲과 그 숲이 만든 비어 있는 마당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잠재력을 내포한 공간이 됐다. 숲과 비어 있는 공간 사이에 건축물을 둬 새로운 층을 지었다. 그러자 숲과 건축물이 하나의 덩어리가 됐다. 그 사이 빈 공간에는 마당이 조성됐다. 공원의 개방감을 연출하기 위해 수목 45종 7,000여주를 심었다.
역사박물관은 동선에 따라 이동할수록 경건함과 웅장함이 느껴진다. 장소에 따라 층고가 다르고 공간의 깊이감도 다르다. 수십 미터의 직선으로 뻗은 진입램프를 지나 진입광장에 들어서면 하늘이 활짝 열린 공간을 접하게 된다. 하늘광장이다.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정신을 기리는 추념의 의미를 담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박물관 안으로 진입하면 반복되는 격자로 형상화된 로비를 마주하게 된다. 경건한 십자기둥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공간을 지나면 지하 전당을 두르는 어두운 램프가 나타난다.
아래로 내려가던 중 나타난 코너에는 성인 정하상을 기념하는 경당이 있다. 여기서 매일 같이 미사가 열려 그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모든 순례자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설교자의 목울림은 경당 벽을 부딪치며 짙은 여운이 돼 청동의 문밖 램프까지 울려 퍼지는 구조다.
램프의 끝에서는 지면으로부터 14m 아래에 마련된 경건하고 웅장한 입방체 튜브 모양 공간이 나타난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사멸한 위인을 기리는 기념의 공간이다. 사방이 열려 떠 있는 두께 1.5m의 두꺼운 벽은 분명한 경계를 지으면서도 누구나 받아들이겠다는 듯 2m 높이의 틈을 두고 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작지만 영롱한 빛 우물은 이곳에 ‘전당의 바닥’이 있음을 알려 준다. 기념 전당을 지나면 무표정한 벽돌로 둘러싸여 하늘로 시선을 유도하는 광장에 도달한다. 윤승현 대표는 “과거의 상처를 공감 가능한 공간으로 치환하려 했다”며 “이런 과정을 의미화해 관람객에게 독특한 성격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일련의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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