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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1955년 흑백차별 철폐운동

[오늘의 경제소사]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몽고메리 경찰서에서 지문을 찍고 있는 로자 파크스. /위키피디아

1955년 12월5일 오전9시30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즉결재판에서 로자 파크스(당시 42세)가 벌금 12달러 판결을 받았다. 죄목은 주 조례 위반. 흑백 공동좌석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유죄가 인정됐다. 몽고메리시는 버스의 앞좌석 10개는 백인 전용, 뒷좌석 10개는 흑인 전용으로 구분하고 엄격히 지켰다. 중간좌석 16개는 흑백 공동이었으나 백인 승객 우선. 흑인 승객이 아무리 많아도 백인이 타면 좌석을 내줘야 했다. 버스 승객의 75%가 흑인이었지만 흑백차별 성향이 강한 몽고메리시에서 흑인의 권리는 주장하기 힘들었다.

재봉사로 일하던 파크스는 닷새 전 퇴근길에 버스에 올라 공동좌석에 앉았다가 백인에 자리 양보를 거부한 혐의로 체포되고 재판대까지 올랐다. 체포 소식이 전해지며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이 들고일어났다. 흑인 사회는 재판 당일만이라도 버스 승차를 거부하자는 전단을 돌렸다. 유죄 판결이 떨어진 날 열린 저녁 특별예배에서 킹 목사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날까지 투쟁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현실적인 대안도 내놓았다. ‘버스에 탄 순서대로 착석하되 흑인은 뒤쪽부터 백인은 앞쪽부터 앉는다.’

몽고메리의 백인 사회가 합리적 대안을 코웃음으로 흘리자 흑인들이 똘똘 뭉쳤다. 카풀제를 실시하고 자가용이 있는 흑인들은 자원봉사로 사람들을 태웠다. 일부 택시기사들은 흑인 승객에게 버스요금만 받았다. 해가 바뀐 뒤부터 시 당국은 더욱 강경책을 휘둘렀다. 킹 목사를 교통법규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보이콧 동참 흑인들에게도 각종 압력을 가했다. 카풀 봉사자들은 운전면허와 자동차보험 취소 처분을 받았다. 흑인 승객의 요금을 깎아준 택시기사들에게는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왔다.

버스 승차거부 운동이 1년에 접어들 무렵 몽고메리 법원은 시가 제출한 ‘카풀 금지 명령’을 받아들였다. 운송사업 법규상 무인가 행위라는 점을 들었지만 바로 뒤집혔다. 연방대법원이 ‘흑백 분리를 결정한 앨라배마주 조례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 흑인 사회는 마침내 이겨 당연한 권리를 따냈다. 극렬저항을 주장하는 일부를 킹 목사는 이렇게 말렸다. ‘무기가 있거든 내려놓으시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폭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백인의 오만하고 터무니없는 차별에서 한국이 보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부터 사는 곳, 학벌, 직업을 비롯한 유무형의 각종 차별에서 우리 사회는 과연 자유로울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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