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ㄴ씨의 상사는 회식에 불참하면 ‘내년 재계약은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직원들에게 술값을 내게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월급이 올랐다는 이유다. ㄴ씨는 “다들 재계약 및 회사생활이 힘들어질까 봐 두려워 회식비를 낸다”고 말했다.
# ㄷ씨는 얼마 전 새 팀장이 온 기념으로 했던 팀 회식 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떴다. 몸이 안 좋고 많이 취해서였다. 그런데 팀장과 팀원들이 그날 이후 본인을 따돌리기 시작했고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ㄷ씨는 하소연했다. 그는 “회식에서 일찍 일어났다는 이유로 한패가 돼 괴롭히는데 너무 힘들어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8일 각종 송년·신년 모임이 이어지는 연말연시를 맞아 이른바 ‘회식 갑질’ 사례가 이어진다고 밝혔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회식 관련 갑질에 따른 제보만 23개라고 직장갑질119 측은 덧붙였다. 회식 참석 강요를 비롯해 부하직원에게 술값을 내게 하는 일도 있었다. 먼저 귀가한 사람을 팀 전체에서 따돌리거나 일부만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 주요 일정을 결정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단합대회에서 장기자랑을 해야 하거나 몸이 아픈데도 휴일 야유회에 가야 했던 이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갑질119는 연령에 따라 회식 및 단합대회 등 조직문화를 바라보는 인식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젊을수록 ‘회식 갑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 6월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측정한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를 보면 회식 관련 문항인 ‘팀워크 향상을 위한 회식이나 노래방 등은 조직문화를 위해 필요하다’에서 20대는 71.6점을 기록한 반면 50대가 59.85점을 나타냈다. 갑질 감수성 조사는 100점에 가까워질수록 직장에서 벌어지는 갑질을 예민하게 인지한다는 의미다. ‘휴일에도 단합을 위한 체육대회나 MT와 같은 행사를 할 수 있다’는 항목에서도 20대 점수 평균은 73.36점이었으나 50대는 62.35점에 그쳤다.
직장갑질119는 “회식 강요는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에도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아직도 적지 않은 사업장에서 회식과 노래방·장기자랑을 강요하고 피해자들은 불이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를 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07년 회식 강요로 위염·불면증·두통 등이 생겨 치료를 받은 여성노동자가 직장 상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3,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한 바 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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