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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미전실 ‘이건희 보고용’ 문건에도 “노조 와해·고사 강구”

4년간 전략 문건에 “주동자 해고·노노갈등 유발” 등 실려

‘노조 설립 첩보 대책 수립해라’식 문제 내 계열사 대상 모의훈련까지

법원 “고위 임원까지 보고된 점 인정…전례 없는 부당노동행위”

/연합뉴스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전략 중 일부 내용이 이건희 회장 보고용 문건에도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가 지난 1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을 판결하면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등의 공모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이 나왔다.

재판부는 “미전실에서 이건희 회장 보고 목적으로 2011년 3월 작성한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대응방안’ 문건에는 그룹 노사전략과 일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엔 “노조 설립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거나 “소수 문제인력에 의한 노조가 생기더라도 조기에 와해시키고, 여의치 않을 경우 시간을 끌면서 고사화하거나 친사 노조를 설립해 무력화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재판에 넘겨진 삼성전자서비스 및 삼성 에버랜드 노조 방해 사건의 혐의 내용과도 비슷하다. 재판부는 이 문건의 파일 이름 마지막에 적힌 ‘A보고’라는 문구를 근거로 이건희 회장 보고용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최지성 전 미전실장 등은 회장 보고 문건을 ‘A보고’라고 지칭한다고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실제로 이 문건이 이 회장에게 보고됐는지에 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최지성 전 실장이 관련 지시사항을 하달했을 가능성 정도만 인정했다.

앞서 검찰은 2013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150쪽 분량의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폭로한 후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했으나 이건희 회장과 최지성 실장 등을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폭로 이후 6년 만에 이뤄진 판결에서, 재판부는 2012년 문건만이 아니라 2010∼2013년 작성된 문건의 전반을 살피고 미전실 차원의 ‘조직적 범행’임을 인정했다.

문건에 담긴 삼성그룹의 노사전략 기조는 2010년 ‘흔들림 없는 비노조 경영 견지’, 2011년 ‘확고하고 건실한 비노조 조직문화 구축을 통한 복수노조 위기 극복’, 2012년 ‘노사사고 예방을 위한 총력대응 체제 가동과 노조설립 시 모든 부문 역량 집중에 의한 조기 해결로 취약요인을 해소해 항구적 노사안정 기반 구축’ 등으로 점차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 2013년엔 전년 상황과 관련 “삼성그룹의 경우 2012년 발생한 수차례 노조설립 시도를 모두 차단했으나,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대항 노조를 사전 설립하고 단체교섭권을 확보한 후 주동자를 해고하는 등 세력 확산을 차단했음에도 노조가 아직 와해되지 않고 있다”라고 적었다.



구체적인 전략도 2010년 노사교육을 강화하고 비상상황실을 설치한다는 정도의 내용에서 2013년 “노사협의회는 비노조 기능의 핵심 요체이므로 유사시 친사 노조로 전환 가능하도록 CEO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노사위원을 사전 발굴해 전략 육성한다”는 등 노골화했다.

미전실은 이런 노사전략에 따른 실적을 계열사 사장 인사에도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계열사 사장의 실적 정리 문건을 보면 ‘문제인력 감축 실적’이라는 항목에 ‘2011년 문제인력이 총 93명으로, 13명을 승격했고 8명을 우군화했으며 1명이 퇴직했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계열사를 대상으로 하는 모의훈련도 1년에 수 차례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모의 훈련은 ‘장기 승격 누락자가 사내 개인 블로그에 인사정책 비판 글을 올리자 일부가 동조해 노조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첩보가 들어왔다. 상황을 판단·분석해 대책을 수립하라’는 식의 문제를 내고 그 답안에 대해 평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식으로 이뤄졌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실행해야 할 행위를 예정해 놓은 것으로, 미전실이 그룹 노사전략을 통해 공모한 부당노동행위를 계열사에 지시한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열사) 노조 설립과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삼성그룹 전체에 중요한 사안이었던 만큼 미전실과 삼성전자 고위 임원들까지 계속해서 보고받아 왔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삼성 직원들이 재판 단계에 이르러 검찰에서의 진술을 뒤집거나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전체적인 진술 취지나 일관성, 삼성 측 피고인들이 대부분 휴대전화를 복구하지 못하게 삭제한 점 등을 보면 검찰 진술은 대체로 믿을 수 있으나 법정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미국·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만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처벌한다는 삼성 측의 항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비판적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형사처벌 조항은 노동쟁의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특유의 현실에 비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도입된 것이므로 입법자의 의도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민수기자 minsoo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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