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은 지난해 뉴욕타임스(NYT)가 꼽은 최고 인터내셔널 TV쇼 톱10 중 하나로 선정됐다. NYT는 ‘킹덤’에 대해 “16세기 조선 시대 궁궐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음모에 좀비로 변하는 역병과 신분계급 사이의 드라마를 더한 호러 어드벤처극”이라고 칭했다. ‘킹덤’은 전 세계에 ‘갓 열풍’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시작은 넷플릭스가 2016년 말 tvN 드라마 ‘시그널’로 큰 관심을 받은 김은희 작가에게 보낸 ‘러브콜’이었다. 이후 김 작가가 계약 관계에 있는 에이스토리(241840)와 넷플릭스를 연결해준 것이 ‘킹덤’ 탄생의 발판이 됐다. 당시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지금과 같은 파급력을 갖추기 전이었다. 에이스토리로서는 김 작가와 함께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적지 않은 제작비를 받고 작품을 제작하는 대신 커다란 모험을 한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킹덤’은 에이스토리에 날개를 달아줬다. 지난해 7월 중국 텐센트 등의 투자를 받고 코스닥에 상장했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시즌 1·2를 잇따라 제작하고 3월에는 ‘킹덤’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다.
드라마 제작 뒤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비하인드 더 드라마’의 여덟 번째 주인공으로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를 만났다. 최근 서울 상암동 에이스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킹덤’ 제작 자체로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다” 라고 털어놨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제작비를 어느 정도 보전해주긴 했지만, 이전에 없었던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다 보니 원래 계약보다 제작비가 2배나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킹덤’ 덕분에 넷플릭스는 가입자 수를 늘렸고, 에이스토리도 한국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 제작사가 됐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킹덤’은 서로에게 ‘윈윈’이 됐다.
이 대표는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대해 “넷플릭스는 콘텐츠가 오랫동안 유지돼야 한다는 전략 하에 현존 최고의 화질을 추구하는 등 드라마에 최첨단 영상기술을 사용한다”며 “‘킹덤’ 제작 과정에서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과 콘텐츠를 분석하고 접근하는 회의도 하는 등 우리나라 프로듀서와 작가 입장에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2004년 에이스토리를 설립해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우리가 만난 기적’ ‘시그널’ 등을 제작하며 입지를 다졌다. 그가 처음부터 드라마 제작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미국 MTV에 입사하고 싶어 1991년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방송을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KMTV에 입사했다. 이후 국민일보 비서실로 가 스포츠투데이 창간과 현대방송 인수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인수한 방송사가 2년 후 CJ미디어에 팔리게 되면서 이 대표는 ‘남 좋은 일 하지 말고 빨리 창업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드라마 ‘허준’ ‘올인’ 등을 집필한 최완규 작가와 함께 설립한 회사가 에이스토리다.
이 대표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해외 진출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2005년 CJ의 투자를 받은 후 2006년 무렵 컬럼비아 픽처스, 워너브라더스 등 미국 6대 메이저 회사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 TV 드라마 시장인 LA 스크리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이 대표는 “당시 미드 ‘위기의 주부들’ 시즌2가 전 세계에서 총 1,000억 원 어치 팔린 것을 보고 ‘이거구나. 드라마도 대박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우리나라 ‘겨울연가’의 대박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에 국한된 것이었는데, 그때 미국 시장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힘든 일도 많았다. 지상파에 드라마 편성을 3개나 받아놓고도 그해 방송이 하나도 나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회사 경영이 힘들어질 정도의 위기를 겪었다.
그가 LA 스크리닝에 참석했던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아시아를 배경으로 하거나 아시아인이 주인공이 영화·드라마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한국 콘텐츠는 특히 높은 주목을 받는다. 그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드라마를 가장 잘 만든다”며 “주변 환경적인 요소도 한몫한다”고 봤다. 그는 “일본은 내수 시장만으로도 수익이 나기 때문에 해외시장에 관심이 적은 편이고, 중국은 가장 큰 시장이지만 정치·사상적으로 제약이 많아 장르별 다양성이 떨어지는 만큼 한국은 여러모로 할리우드에서 접근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의 사업자들은 한국을 발판으로 동남아 진출도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다만 이 대표는 “지금 기회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드라마의 질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영원히 못 갈 수도 있다”며 마냥 낙관적으로 보는 것을 경계했다. 지금이 한국 드라마 세계화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렇듯 ‘여태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동북아시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 대본을 작업하고 있다. 한중일 등 동북아시아에 살았던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결합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담아낼 예정이다. 이 밖에도 드라마 10여 편 정도가 개발돼 대본이 나와 있고 캐스팅 등 제작 준비 과정에 있다. 그는 또 “넷플릭스와의 좋은 관계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4~5개 OTT들이 새롭게 런칭하는 만큼 그쪽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즌물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드라마 제작의 최전선에 선 그가 생각하는 드라마란 무엇일까. “드라마를 어떤 좋은 책, 양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막장 드라마를 만들 생각은 없어요.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은 제 자신을 정화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도 많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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