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를 설립한 빌 게이츠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는 2000년 남편과 함께 세계 최대 자선단체인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를 세웠다. 설립 당시 사람들은 그가 세계 최고 부자의 아내로서 명예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멜린다는 재단 설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빈곤과 질병의 원인을 찾아 전 세계 현장을 직접 누비고 있으며, 자신의 경험과 재단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즉각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찾아내고 있다.
신간 ‘누구도 멈출 수 없다’는 멜린다 게이츠의 첫 번째 에세이다. 그가 재단 설립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부터 실제 세상을 변화시키기까지 20여 년 간의 여정을 담아냈다. 빌 게이츠의 아내로서,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한 명의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담담한 고백들도 함께 담겼다.
세계 최대 자선재단 설립의 아이디어는 멜린다가 1993년 빌과 약혼 여행으로 떠난 아프리카에서 빈곤의 현장을 마주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아이를 업고, 장작더미까지 머리에 이고 있는 한 어머니의 모습과 담배를 피우며 노닥거리는 남자들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이후 MS에서 퇴사해 가정주부로 살던 멜린다는 1997년 신문에서 아프리카의 빈곤과 질병 문제를 다룬 기사를 읽으며 ‘어째서 세계의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이 의문은 재단 설립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멜린다는 말라위, 니제르, 나이로비, 인도 등 질병과 빈곤이 극심한 곳, 특히 영아 사망률이 가장 높은 곳을 방문할 때마다 피임약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수많은 어머니와 마주했다. 멜린다는 ‘피임약 배포’와 ‘가족계획’이야말로 빈곤 종식을 위한 가장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보고 이를 재단의 최우선순위 사업으로 지정했다. 여성의 권한 강화를 막는 각종 제약이 그동안 세계를 빈곤과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책은 이 밖에도 무급노동, 조혼, 여아 교육, 직장 내 성 평등 문제 등 9가지 문제에 대해 저자가 들인 노력을 담고 있다.
지난해 10월 멜린다는 향후 10년간 10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를 여성의 권한 강화에 쓰겠다고 밝혔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남성에 맞서기 위해 여성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성을 포함한 전 인류를 위해 여성의 삶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만8,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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