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이 7일 기준으로 99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번 선거 승패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정답은 ‘스윙보터(swing voter)’라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얘기다. 스윙보터는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를 의미한다. 마음이 흔들리는 투표자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부동층 유권자’라고 한다. 스윙보터들은 확고하게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정치 상황과 이슈, 정책 등에 따라 표심이 달라진다.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선거에서는 스윙보터의 선택은 결정적 변수가 된다.
스윙보터는 본래 미국 정치에서 자주 쓰는 용어이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공화당이나 민주당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에서는 양대 정당에 쏠리지 않는 투표자를 스윙보터라고 부른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장악한 지역이 아니어서 선거 때마다 우위 정당이 바뀌는 경합 주(州)를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라고 한다. 미국의 대선이나 상·하원 선거의 승패는 스윙보터와 스윙 스테이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야 정당들은 기존 지지층인 ‘집토끼’를 지키면서 ‘산토끼’인 스윙보터를 더 많이 끌어안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체 유권자 가운데 대체로 진보층이 30%, 보수층이 30%이고 중도층·부동층이 40%쯤 된다”면서 “중도층·부동층 가운데 절반쯤은 투표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인 20%가량의 선택이 총선 승패를 판가름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선거에서 누가 스윙보터인가
우리 정치에서 스윙보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정의당 등을 확고하게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라고 할 수 있다. 진보층과 보수층으로 고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선거 여론조사에서 스윙보터는 우선 ‘무당층(無黨層)’으로 나타난다. 범위를 넓히면 ‘중도층’까지 포함된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셋째 주(17~19일) 전국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24%로 집계됐다.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율은 각각 37%, 23%였다. 이 조사에서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층이라고 규정한 응답자는 전체의 30.7%로 집계됐다. 진보층은 29.8%, 보수층은 23.5%, 모름·무응답은 16%였다.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30~31일 전국 유권자 1,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에서 무당층은 12%로 나타났다.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은 41.9%, 한국당은 32.9%였다. 한국갤럽의 전화조사원 면접 방식과 달리 리얼미터는 90%를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무당층이 상대적으로 적게 응답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자신을 중도층으로 규정한 응답자는 전체의 37.1%에 이르렀다. 진보층은 27.9%, 보수층은 21.1%, 모름·무응답은 13.9%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총선의 스윙보터 규모에 대해 “선거 막판까지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하는 중도층과 무당층이 전체 유권자의 20~30%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무당층은 19~29세(38%), 하위소득층(38%), 무직·은퇴자(37%), 여성(27%)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무당층은 학생(26.8%), 19~29세(21.5%)에서 많았다.
◇현재 스윙보터의 표심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스윙보터의 최종 선택을 예측하려면 현재 이들의 정치 성향을 심층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리얼미터의 지난해 12월 말 조사에서 중도층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은 42.2%, 한국당은 33.6%, 바른미래당은 5.7%, 정의당은 5.5%였다. 전체 응답자의 민주당(41.9%), 한국당(32.9%) 지지율과 큰 차이가 없다. 아직 중도층 마음이 여야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지 않은 셈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중도층과 무당층의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다는 점은 여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49%는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 46.8%는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를 했다. 그러나 중도층에서는 긍정 평가가 46.8%로 부정 평가(51%)보다 약간 적었다. 무당층에서는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60.7%에 달해 긍정 평가(21.2%)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갤럽의 지난해 12월 셋째 주 조사에서도 중도층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50%로 긍정 평가(41%)보다 높았다. 무당층에서는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21%에 그쳤으나 부정 평가는 56%에 이르렀다.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무당층에는 여권의 국정운영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야권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면서 “무당층과 중도층이 여야의 선거 캠페인과 이슈 논쟁을 지켜본 뒤 고심 끝에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윙보터는 결국 어느 당과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
부동층 유권자는 총선 며칠 전까지 고민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지지 정당과 후보를 결심한 뒤 투표소로 향하는 사람들의 표심은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확인하기 어렵다. 선거 이변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스윙보터들이 막판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특정 정당에 쏠리지 않는 스윙보터는 이번 총선에서 부동산과 세금 관련 등 개인의 이해를 좌우하는 경제·사회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될 것”이라며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도 부동층 표심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 소장은 “본래 총선은 정권 중간평가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분열된 야당이 뚜렷한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고 있는 점은 일단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보수 야권이 통합과 공천 물갈이 등을 통해 대안 역할을 한다면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스윙보터들은 마땅한 정당 선택지가 없다면 인물을 보고 고르거나 투표에 불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보수 야권의 통합 여부에 따른 선거 대결 구도가 드러나야 스윙보터들도 어느 쪽을 택할지 결정할 것”이라며 “야권 통합이 이뤄진다면 야당이 선전하겠지만 야권 분열이 지속된다면 여당이 우세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권 교수는 “스윙보터들은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 등을 둘러싼 정치 싸움보다는 경제·복지 정책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며 “현재 자신들의 삶을 편안하게 할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비전을 내놓는 정당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고 분석했다. 그는 “합리적 스윙보터는 진영 싸움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선호하기 때문에 국민 통합을 지향하는 정당이 점수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인 김병민 행정학 박사는 “이번 총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라면서 “야권 통합으로 여야 1대1 구도가 된다면 정권 심판론이 작용해 야당이 기선을 잡을 수 있지만 1여(與) 대 다야(多野) 구도가 되면 여당이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박사는 “스윙보터 중 일부는 양대 정당이 아닌 제3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제3지대 정당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비례자유한국당 등의 출현으로 실제 제3당의 위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만일 비례민주당까지 만들어진다면 제3당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윙보터 지역·세대는 총선의 주요 승부처
미국에서 ‘스윙 스테이트’의 선택이 선거 승부를 결정하듯이 한국에서도 ‘스윙보터 지역’은 총선의 중요한 승부처이다. 스윙보터 지역으로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과 대전·충남·충북 등 충청권을 들 수 있다. 특히 우리 정치의 심장부인 수도 서울의 성적표는 제1당 향배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48개 선거구가 있는 서울에서 제1당으로 부상한 더불어민주당이 35석을 차지했으나 여당인 새누리당은 1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인 2008년 18대 총선 때 서울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무려 40곳에서 승리했으나 야당인 통합민주당의 당선자는 7명에 불과했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서울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이 36.4%, 한국당이 31.2%로 집계됐다. 양대 정당의 지지율 차이가 오차범위 안팎이어서 서울에서 여야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총선에서 당선자의 소속 정당이 자주 바뀌는 ‘스윙보터 선거구’는 전체 253개 가운데 30~50개가량 된다. 접전 선거구의 표심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서울에서 광진갑·서대문갑·마포갑·마포을·구로갑 등 5곳은 대표적인 스윙보터 선거구이다. 이 지역구들은 16~20대 총선에서 세 번 이상 당선자의 소속 정당이 바뀐 곳이다.
‘스윙보터 세대’의 선택도 총선 승부의 풍향계가 된다. 30대와 40대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매우 높지만 6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한국당이 강세이다. 반면 50대와 20대는 여야의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아 스윙보터 세대로 볼 수 있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50대에서 민주당(43.9%)과 한국당(36.9%)의 지지율 차이는 7%포인트이다. 19~29세에서도 민주당(34.9%)과 한국당(25.8%)의 지지율 격차는 10%포인트 이내였다. 배 소장은 “스윙보터가 상대적으로 많은 수도권·충청권 지역과 50대 초반과 20대의 선택이 총선 승부를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그네처럼 흔들리는 부동층의 표심이 어느 지점에서 머물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다.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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