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생한 이봉창 의사는 1931년 1월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운동의 중심지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를 찾아가 김구 한인애국단장을 만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친 이 의사는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12월 말 도쿄에 도착했다.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열리는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의사는 거사일인 1932년 1월 8일 도쿄 경시청 앞에 일왕 행렬이 나타나자 그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 폭발해 일장기 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 필 만을 거꾸러뜨리는 데 그쳐, 일왕 폭살 계획은 실패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일왕 폭살에는 실패했지만, 임시정부 등 항일운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고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 의거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사 보고, 기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