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한 이성윤(58·사법연수원 23기) 검사장이 13일 취임 일성으로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에 날린 경고 메시지와 같다. 이에 이 지검장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정권 수사와 관련해 과잉·별건수사 등을 이유로 수사팀을 통제·견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이 지검장은 오전 취임식에서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강조하며 “수사의 단계별 과정 과정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절제와 자제를 거듭하는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또 “민생과 관련된 검찰 본연의 임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형사부 중심의 민생수사를 강조하면서 정권 등을 겨냥한 반부패수사에서는 힘을 뺄 것임을 시사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는 지난해 9월27일 문 대통령이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검찰에 경고 메시지를 내놓은 것과 같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발언은 조 전 장관의 방배동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검사와 조 전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며 수사압력 논란이 불거진 다음날에 나왔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는 검찰의 수사 대상이던 조 전 장관이 거듭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중 발표한 ‘검찰개혁 추진계획 발표’와 ‘검찰개혁방안 브리핑’에서 이를 주요 목표로 언급했으며 퇴임사에서는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는 오랜 소신이었다”고도 밝혔다. 즉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이 검찰에 대한 문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의 경고·요구 메시지를 똑같이 반복한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대표적인 ‘친문(친문재인)’ 검사인 이 지검장이 부임과 함께 청와대·여권 상대 수사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했다는 반응이다. 이 지검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다. 또한 참여정부 때인 지난 2004년 3월29일부터 이듬해 4월1일까지 1년간 청와대 사정비서관실에서 특별감찰반장으로 일하며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는 실제로 정권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대검 반부패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른 것이다. 이는 검찰 내 ‘빅4’ 보직 중 3곳을 거친 것으로 검찰 역사상 유일무이한 ‘꽃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 중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 조 전 장관 일가족에 대한 수사·공판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검장은 평검사의 부서 배치를 결정하기에 수사팀의 힘 빼기가 가능하다. 평검사 인사 발령은 내달 3일 예정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지검장은 일선에서 수사와 공판을 지휘할 뿐만 아니라 인사도 좌지우지할 수 있어 수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수사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 지검장 사이에서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총장과 이 지검장이 수사 중요 단계에 대한 결정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9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내에 특별수사팀을 새로 꾸릴 때는 사전승인을 받으라”고 전격 지시했기 때문에 윤 총장은 직속으로 별도의 수사팀을 꾸리는 식으로 이 지검장을 우회하기가 난감한 상황이다.
이 같은 대립이 지속되면 중앙지검장 차장·부장 선에서 항명 논란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예컨대 2013년 윤 총장이 ‘국가정보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을 때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맞부딪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당시 윤 총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장에서 조 지검장에게 국정원 직원 체포와 압수수색 필요성을 보고했으나 반려됐다는 것을 밝히면서 “검사장을 모시고 이번 사건을 끌고 나가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폭로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2013년 당시 윤 총장은 자신을 팀장으로 올린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임했음에도 공개 항명을 했다”며 “윤 총장이 대검에서 버텨준다면 일선 수사팀이 이 지검장의 지시에 그저 따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