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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디지털 시대 학술정보생태계의 혼란(1)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내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아이작 뉴턴이 1676년에 쓴 편지에서 인용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표현이다. 새로운 생각은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다.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지려면 더 넓게 조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인 만유인력의 법칙 역시 거인, 즉 다른 많은 이들에 의해 축적된 정보와 지식의 총체 위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연구자들이 거인의 높은 어깨 위까지 더 빠르고 더 편하게 올라가게 해주는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학술도서관과 사서다.

학술도서관과 사서는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해주기 위해, 그들의 연구 성과를 널리 공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도구가 학술지(저널)와 데이터베이스다.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도구들은 아날로그 기반에서 디지털 기반으로 변화했다. 인터넷 보급과 함께 변화가 시작되던 1990년대 중반, 많은 이들은 종이의 종말을 이야기하며 디지털화된 학술정보가 더 빠르고 저렴하고 자유롭게 유통되는 유토피아의 도래를 예견했다.

학술정보 유통에서 종이 학술지의 비중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제작·유통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검색과 이용이 불편한 종이 학술지는 빠르게 전자저널로 대체됐다. 학술정보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연구자들은 이제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연구 성과를 공유하며 학문과 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예언이 적중했다고 봐야겠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예언자들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은 금방 밝혀졌다.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 글로벌 유통망을 가지고 학술정보생태계의 강자로 군림해온 기존의 학술정보 출판 및 유통 기업들은 새로운 환경을 선도하며 영향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학술정보의 생산·축적·확산까지 전 주기를 관리할 수 있는 몇몇 거대 전문기업의 산하로 학술정보 생산자·소비자·관리자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됐다.

급기야 2012년 세계 최대 학술도서관 중 하나인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장은 2,000여명에 이르는 대학 교수와 연구진에게 보낸 메모에서 “치솟는 학술지 구독료 인상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시스템에 협조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를 구성하는 10개 대학 도서관들은 학술지 출판계의 공룡기업 엘스비어에 구독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국내 연구자들과 사서들은 이 대결을 그냥 흥미진진하게 구경만 하면 될까. 그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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