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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S] 경매에선 200만원, 화랑에선 3,000만원…같은 작가 작품도 천차만별

■가격 산정·유통 과정 문제 없나
평판·주제·재료·전시이력 등
작품가격 평가 요소 다양·복잡
정량평가 아닌 주관적 평가 일쑤
같은 작가라도 경매·화랑 달라
미술시장정보시스템 운영하지만
경매만 등록, 개인간 거래는 전무
정확한 작품유통 현황 알수 없어

주 1회꼴로 열리는 온라인 미술품 경매에 30년 이상 활동한 중견미술가 A 작가의 작품이 나왔다. 가로세로 1m에 달하는 50호짜리 유화로 추정가는 200만~500만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갓 데뷔한 신진작가의 작품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최정상급 미대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해외 전시와 각종 수상이력도 풍부한 A 작가의 같은 크기 작품을 화랑에서 구입할 때는 3,000만원을 내야 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근본적으로 미술품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A 작가의 같은 크기 작품이라 해도 제작 시기에 따라, 작품 소재에 따라, 재료와 기법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지난달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53억원(수수료 포함)에서 팔린 ‘우주 5-Ⅳ-71 #200’를 비롯한 김환기의 1970년대의 전면 점화(點畵)는 100호 기준 20억원 이상에 거래되는데, 점의 배치 등이 이루는 조형성과 색채 같은 차이에 의해 45억~85억 원까지 가격 차를 보인다. 항아리와 꽃 등이 등장하는 1950년대 반구상 작품은 가장 비싸게 거래된 것도 40억원을 넘지 않는다. 점화라고 모두 비싼 것은 아니라서 크기에 따라 2억원 선에 팔리기도 하고, 신문지에 그리거나 작은 스케치북에 그린 드로잉이라면 수천만원 대에 구입할 수도 있다. 캔버스에 그린 유화가 종이에 그린 수채화보다 항상 더 비싼 것도 아니다. 발레 그림으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의 경우 종이에 그린 파스텔화가 유화보다 더 비싸다.

미술품 유통 시장이 소위 ‘깜깜이’로 불리는 것은 이처럼 정찰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A 작가 작품의 경우 화랑이 턱없이 비싸게 판매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경매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공개 시장인 경매에서는 비교기법(comparable setting)으로 그림값을 매긴다. 가능한 그 작품과 가장 유사한 과거 거래기록을 찾아 추정가를 정한다. A 작가는 과거 비슷한 유형의 작품이 경매에 출품된 적이 없어 마치 처음 선보이는 ‘신인급’으로 추정가가 낮춰진 것이다. 경매회사는 기존의 화랑 전시가격을 참조했지만 A 작가의 작품 중 선호도가 높은 1980년대 작품이 아닌데다 급매물 격인 온라인 경매에 출품됐기 때문에 가격이 더 낮게 책정됐다.

기존 경매 이력이 없다고 A를 ‘투자가치 없는 작가’로 판단할 수도 없다.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경우 컬렉터들은 쉽사리 작품을 내놓지 않고 오래 소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에르메스 미술상, 이중섭 미술상 등 권위 있는 미술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경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까닭이다. A 작가의 경우 미래가치에 해당하는 예술성은 높지만 현재 경매 이력이 미진했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장식성이 없어 고객 수요도 평가가 낮았다.

미국감정가협회(AAA) 등 권위 있는 해외단체를 비롯해 국내 경매사·화랑이 미술품 가격평가에서 고려하는 요소는 △작가 평판 △창작 시기 △주제 △작품재료 △크기 △서명 △작품양식 △완성도 △소장 이력 △전시 이력 △희소성 △참신성 △시장 상황 △수요 트렌드 등 다양하고 복잡하다. 정량평가가 어려운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하다 보니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탐사S] 경매에선 200만원, 화랑에선 3,000만원…같은 작가 작품도 천차만별
국내 화랑가가 밀집해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를 한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 /오승현기자

‘이름값’이 없는 신진작가의 경우 100호 기준 300만원으로 시작하는 게 통상적이라고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복수의 화랑주들이 입을 모은다. 지난 2006~2007년 한국 미술 시장의 유례없는 호황기 때 30대를 전후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수천만원대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때 가격의 반값에 내놔도 되팔기 어렵다. 10년 새 수요 트렌드가 바뀌기도 했지만 ‘거품’이 끼기도 했다.

작품값이 통용되려면 비슷한 수준에서 반복적·지속적으로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화랑은 특정작가의 전시를 기획해 출품작의 일정량을 같은 가격대로 판매했을 경우 ‘시장가격’으로 판단하고 다음 거래를 위해 가격을 조금 올린다. 가격을 올려서도 거래가 꾸준하면 또 올리는 식으로 가격을 조정하는데 신진작가가 화랑 작품가를 두 배로 올리는 데 6~7년 걸리는 게 보통이다. A 작가는 이런 식으로 30년에 걸쳐 3,000만원대의 화랑가(價)를 형성한 것이다. 경매에서 한두 번 비정상적인 고가에 낙찰된 적이 있더라도 반복적·지속적 거래가 일어나지 않으면 시장가격으로 보지 않는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B씨가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를 대관해 첫 개인전을 열었고 출품작 중 가장 비싼 작품을 B씨의 할아버지가 700만원에 구입한 것이나, 국회의원 남편을 둔 C화가의 전시가 문전성시를 이뤄 작품들이 수백만 원에 팔렸다고 해서 이들이 ‘시장성 있는 작가’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 시장이 이처럼 특수한데다 국내 시장은 유난히 협소하다. 국내 최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측 관계자는 “연 10회 이상 반복적으로 경매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국내 작가는 작고 작가를 포함해도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공급자 못지않게 수요자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연회비를 내는 서울옥션의 고객은 5만명, 케이옥션은 3만명에 이르지만 이 중 연간 10점 이상의 작품을 구입하거나 ‘억대 그림’을 사 모으는 수집가는 1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가나·국제·현대·아라리오갤러리 등 국내 주요 화랑의 디렉터 10명을 설문해 어림잡은 국내 미술 컬렉터 수치도 500명 미만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매년 발표하는 ‘미술 시장 실태조사’의 전국 화랑 수 460곳(2018년 기준)과 맞먹는다. 이 중 약 23%인 104곳이 일 년 동안 작품을 단 한 점도 판매하지 못했고 절반 이상인 184곳(52%)의 연간 작품 판매금액은 5,000만원 미만으로 보고됐다. 2018년 말 한국계 갤러리스트가 해외화랑인 리만머핀갤러리에서 레비고비갤러리로 이직하면서 ‘고객정보’를 빼돌렸다며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미술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구매층이 얇은 편이다.

미술품 유통은 크게 경매회사, 화랑, 개인 딜러(중개인)에 의해 이뤄진다. 작품에 대한 등기·등록의 의무가 없어 개인 간 거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품 정보 등록을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K아트마켓(미술시장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등록된 사례가 14만건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모두 경매 거래 내용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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