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네 번째 파기환송심 공판이 오늘 열린다. 당초 이 부회장 뇌물 혐의의 수동적 성격을 증언해줄 것으로 예상됐던 손경식 CJ(001040)그룹 회장이 돌연 재판 불참을 선언하면서 재판 향배도 안갯속에 빠지게 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7일 오후 2시5분부터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의 파기환송심 네 번째 공판기일을 연다.
이날 재판은 애초 손 회장이 증언대에 서기로 했었다. 손 회장은 지난 2018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1심에 출석해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 부회장을 퇴진시키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던 전력이 있어 이 부회장 뇌물 수동성 입증에 핵심 증인으로 꼽힌 인물이다. 그는 이 부회장 사촌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손 회장은 지난해 11월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 써밋’ 행사장에서 “재판부에서 오라고 하면 국민된 도리로서 가겠다”며 참석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손 회장이 지난 14일 일본 출장 일정 등을 이유로 갑자기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이 부회장 측 전략은 꼬이게 됐다. 이에 따라 이날 재판에서 이 부회장 측은 삼성의 준법경영 방안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재판장 재량으로 형량을 깎아주는 이른바 ‘작량감경’ 전략의 일환으로 비리척결 시스템 마련에 관한 삼성 측의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25일 첫 공판에서 “몇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삼성그룹이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 못한다”며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삼성은 지난 9일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본격 마련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최종 선고는 다음달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29일 삼성이 ‘비선실세’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세 마리(34억원)의 실질 소유주를 최씨로 보고 이 부회장 사건을 2심 재판부로 파기환송했다. 여기에 삼성이 영재센터에 제공한 후원금(16억원)까지 이 부회장 승계와 관련이 있는 제3자 뇌물로 판단하면서 이 부회장의 총 뇌물 액수는 원심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무려 50억원이 증가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던 이 부회장은 첫 번째 2심에서 삼성의 승마지원 용역대금(36억원)만 유죄 판단을 받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 석방됐다. 하지만 두 번째 2심부터는 뇌물 액수가 50억원을 넘게 돼 최종심에서 형량 증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이나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하게 돼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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