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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림자' 벗어나 '권력 민낯' 겨누다

[리뷰-영화 '남산의 부장들']

18년 장기집권 마지막 향하던 시대

충성경쟁·배신 등 인간 속성 파헤쳐

극단적 클로즈업 등 심리 묘사 초점

누아르·스릴러 조화로 몰입감 높여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에 갇혀있다. 좋든 궂든 그것은 1990년대를 살면 다음 21세기를 내다보는 우리의 숙명이요, 제약일 것이다.”

소설 ‘남산의 부장들’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초판이 발행된 지 28년 가량 지났지만 서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시대를 그린 작품들도 그 사이 적잖이 나왔지만 서문의 말처럼 언제나 그의 그림자에 갇히고는 했다. 이제 또 한 편의 ‘그 시대’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이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남산의 부장들’이다.



최근 언론 배급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남산의 부장들’은 보기 드물게 ‘시대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 ‘내부자들’로 큰 화제를 모았던 우민호 감독의 연출로 팩트에 기반한 동명의 원작소설의 느낌을 살리는 동시에 권력에 대한 인간의 본능,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춰 누아르와 스릴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태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는 실명이 쓰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박통’, 김재규는 김규평, 경호실장 차지철은 곽상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용각, 전두환은 전두혁이라는 캐릭터로 각각 등장한다.

박통의 18년 집권이 마지막으로 향하던 시기의 불안과 초조, 권력을 둘러싼 1인자와 2·3인자들 간의 피 말리는 신경전, 충성경쟁, 배신, 응징 들이 차갑고 건조한 화면에 펼쳐진다. 박통, 김규평, 곽상천, 박용각 등은 어쩌면 권력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인물에 가깝다. 박통은 18년이라는 장기집권에도 끝내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권불십년의 불안에 휩싸여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을 상징한다. 정권 연장을 위해 가신들을 철저히 이용하면서도 눈밖에 나면 철저한 응징을 하는 박통을 바라보는 측근 규평은 충성심, 권력을 향한 욕망, 배신감이라는 복잡한 심리가 뒤얽힌 인간상이다. 또 각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탱크로 밀어’ 버리겠다는 상천은 권력에 대한 맹목성을, 배신당했다고 느낀 순간 살기 위해 박통에게 등을 돌리는 용각은 우리 안에 내재한 생존 본능을 형상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특히 규평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까닭에 관객들은 그가 겪는 다양한 심리상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영화 말미에는 규평의 선택에 대한 상반된 다큐멘터리 영상아 나온다. 10·26 사태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는 감독의 의도다.

사후 수십 년 간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섰던 역사적 인물 박정희를 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시종일관 차갑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지만, 누아르와 스릴러의 재미를 살려 몰입도를 높였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명연기와 이들의 심리 연기의 전달력을 극대화하는 극단적인 클로즈업, 치밀하고 세련된 미장센이 화면에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규평 역의 이병헌은 충심, 의심, 분노를 비롯해 박통에게 총을 겨눈 이후 갈팡질팡하는 불안한 심리를 피부의 미세한 떨림으로 표현해 내며 다시 한번 ‘인생 연기’를 펼쳤다. 대사 없는 클로즈업 컷만으로도 관객들은 규평의 변화하는 심리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박통을 연기한 이성민도 놀라운 연기로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박정희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권력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최후를 직감하는 불안하고 초조하고 신경질적인 심리가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손끝 연기 하나로 묘사된다.

이희준은 대통령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했던 역사 속 실존 인물과 흡사한 외모를 만들기 위해 25㎏이나 증량하는 등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탱크로 밀어버려’ ‘탱크 돌려 버랴’ 라는 그의 대사는 영화의 숨구멍과 같은 웃음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곽도원은 비굴하게 무릎을 꿇다가 철저하게 돌아서는 용각을 열연해 충성과 배신이라는 극단적 감정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22일 개봉.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쇼박스(086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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