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명절 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꼰대’로 치부된다. 안부 한 번 물었을 뿐인데 졸지에 권위적인 꼰대 낙인이 찍히다니, 명절에 잔소리를 듣기 싫은 2030 세대의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꼰대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은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꼰대인 듯 꼰대 아닌 ‘진짜 어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개성 있는 방송인과 드라마 속 캐릭터들을 살펴봤다.
■실력과 소신, 사람 향한 따뜻함 가진 김사부
일반외과·흉부외과·신경외과 전공의를 모두 딴 ‘트리플 보드’를 달성하고 한때 거대병원 수석 외과의로 유명세를 얻은, 수술성공률 97%를 자랑하는 천재의사.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의 주인공, ‘김사부’라 불리는 부용주(한석규 분)의 화려한 수식어다. 하지만 그는 당혹스러울 만큼 까칠하고 투박한 성격의 소유자다. 젊은 후배 의사가 수술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면 ‘니 눈에 그것만 보였다면 너도 별수 없다’고 무시하고, 수술실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럴 거면 차라리 의사를 때려 쳐’라며 독설을 날린다. 수간호사인 오영심(진경 분)이 “요즘 아이들한테 그러면 ‘꼰대’”라고 만류해도 소용없다.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은 김사부를 꼰대로 치부하지 않고 절대적 신뢰를 보내며 따른다. 의사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권위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소신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그는 시청자들 눈에도 본받고 싶은 캐릭터다. 김사부는 생명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 의사의 본질이라는 신념을 위해서는 병원장에게도 서슴없이 할 말을 하고, 서우진(안효섭 분)과 차은재(이성경 분) 등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는 한참 모자란 후배 의사들을 향해서는 고함까지 치며 혼을 낸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마치고 나면 다친 서우진에게 말없이 약봉지를 건내고, ‘수술실 울렁증’이라는 의사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차은재에게도 기회를 주는 김사부는 오늘날 갈수록 보기 힘들어진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사부 캐릭터 덕분에 지난 6일 시즌2를 시작한 드라마는 시즌1 종영 이후 3년이란 공백이 무색하게 동시간대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이어가며 인기를 재확인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김사부는 겉으로 볼 때는 꼰대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지닌 캐릭터”라며 “시청자들이 이에 호응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할 말은 하되 ‘소통’ 중시하는 백종원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해!”
‘슈가보이’ ‘백주부’ 등으로 불리는 백종원(54) 더본코리아 대표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음식점을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모질고 냉정한 조언을 할 때가 많다. ‘이건 아니다’ 라며 호통을 치거나 독설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꼰대처럼 보인다. 실제로 백종원은 ‘꼰대’로 분류되는 조건과 나이를 갖췄다. 1994년 외식 전문 기업 더본코리아를 설립, ‘새마을식당’ 등 수많은 체인을 성공시킨 그는 50대의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요식업계의 대표 멘토다.
하지만 요식업계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백종원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화를 내는 일은 없다. 망할 것이 자명한 사업자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만 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에게 맞는 솔루션을 함께 제시한다. ‘내 말을 무조건 따라야 성공한다’는 강압적인 태도로 자영업자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소통을 바탕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도출해낸다.
백종원의 소통 능력은 이미 2015년 MBC ‘마리텔’에서 확인됐다. 유명인들이 각자 다른 자신만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백 대표는 요리를 소재로 인기를 독차지했다. 요리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모습 덕분이기도 했지만, 요리만으로도 바쁜 와중에 채팅방에 오르는 글들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직접 ‘백종원의 요리비책’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 자영업자나 요리 초보자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를 소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갑’의 위치에서 언제든 내려오는 예능 대부, 이경규
예능 대부 이경규(60)는 예능계의 원조 ‘버럭맨’이다. 허구한 날 후배들에게 호통을 치고, 방송은 ‘본인 중심’이어야 한다며 어깃장을 놓는다. 녹화가 길고 힘든 것은 질색이고, 후배들에게 수발을 들게 한다는 말도 거침없이 한다. 이쯤 되면 ‘대놓고’ 꼰대다.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해 40년 동안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온 예능인 이경규는 연차와 나이를 앞세워 ‘갑’의 위치를 자처한다. 하지만 이경규를 단순한 꼰대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언제든 ‘갑’의 자리에서 내려올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KBS 예능 ‘개는 훌륭하다’에서 이경규는 지시하고 갑질을 하던 평소 역할을 버리고 강형욱 동물훈련사의 제자가 됐다. 환갑의 방송인이 아들뻘에 가까운 강 훈련사의 지시에 따르는 새로운 모습은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졌고, 1%대에서 시작한 시청률은 최고 7.5%까지 상승했다.
그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출연한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소 부족한 가장의 모습으로, 같은 해 KBS ‘나를 돌아봐’에서는 한참 후배인 개그맨 박명수(50)의 매니저로 활동하며 후배의 모진 태도를 재미로 승화시켰다.
이미 이룬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모습도 그를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요인이다. 낚시부터 ‘밥 동냥’까지 온갖 소재를 예능으로 끌고 들어오더니 최근에는 KBS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 대만 국수 ‘마장면’으로 요리 개발로도 대박을 냈다. 나이가 무색하게 그의 예능은 늘 새롭다. 예능계에서의 독보적인 위치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라떼는(나때는) 말이야’를 일삼지 않는다. 정상의 자리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도전하는 그는 꼰대의 탈을 쓴 ‘진짜 어른’이다. /김현진·한민구 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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