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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4차 산업혁명 시대, 영화계도 개방형 혁신 없으면 생존 어려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받은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콘텐츠산업에 먹거리 무궁무진...공룡 OTT업체와도 협력 필요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진출은 위협이자 새로운 기회

영화 '엑시트' 상영 이후 '옥상문 개방' 입법 연결돼 보람 느껴

외부투자 유혹 뿌리치는 이유는 자율성·창의성 제약 싫어서

지난해 말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은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가 최근 서울 암사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개방형 혁신 플랫폼 구상을 털어놓고 있다. /고광본선임기자






‘도시에 독가스가 급속히 퍼지자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건물 옥상으로 대피하려 한다. 하지만 모두 문이 잠겨 있어 하나 둘 쓰러지는데….’ 독가스를 피해 빌딩 숲을 넘나들며 사투를 벌이는 남녀 주인공을 그린 ‘엑시트’의 주요 설정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94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정부 정책까지 바꾸는 기염을 토했다. 오는 4월부터 5층 이상의 고층건물은 비상시 옥상 출입문이 자동으로 개폐되는 장치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50) 대표는 지난해 ‘사바하’ ‘시동’ 등을 흥행시키며 여성영화인모임이 주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다. 남편인 류승완 영화감독과 함께 지난 2005년 외유내강(바깥사람은 유씨, 안사람은 강씨라는 재기발랄한 중의법)을 차린 뒤 ‘짝패’ ‘다찌마와리’ ‘해결사’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군함도’ ‘너의 결혼식’ 등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흥행참패에 따른 경영난을 겪기도 했지만 절치부심 끝에 재기에 성공하며 이제는 투자배급사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영화계는 콘텐츠 공룡인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까지 올해 국내 모바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 진출하기로 하면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엄청난 규모의 콘텐츠와 자본력, 유명 캐릭터들을 갖추고 영화산업을 삼키겠다는 기세다. 여기에 영화계로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세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혁신과제도 만만치 않다.

과연 강 대표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보며 미래 생존전략을 구상하고 있는지가 궁금해 최근 서울 암사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해 말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은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가 최근 서울 암사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개방형 혁신 플랫폼 구상을 털어놓고 있다. /고광본선임기자


-엑시트를 보며 영화의 힘을 다시 느꼈다.

△영화가 히트하며 소위 ‘엑시트법’까지 나오게 돼 보람을 느낀다. 극한 재난에도 여자 주인공이 당당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까지 들을 수 있어 대만족이었다. 그래서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나(웃음).

-지금은 무슨 영화를 찍고 있나.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 속에 고립된 남북 대사관 직원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모가디슈’를 모로코에서 촬영하고 있다.

-영화는 벤처산업인데 흥행에 대한 부담이 크겠다.

△2008년에 개봉한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크게 실패했고 차기작 투자까지 끊기는 비운이 이어졌다.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다음해 두 편의 CF 제작 아르바이트로 밀린 직원들 월급부터 청산하며 재기할 수 있었다. 부당거래·해결사를 제작하며 슬럼프를 탈출했다. 운이 좋았다. 항상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절박감이 든다. 한국영화 한 편당 평균 제작비가 70억~80억원을 웃도는데, 관객 250만명 이상이 돼야 손익분기점을 넘어선다. 극장 수입이 70%가량이고 나머지는 인터넷TV(IPTV), 해외판권 등이다. 몇 년에 걸친 피나는 노력이 개봉 며칠 만에 결판이 나니 얼마나 피가 마르겠나.

-그렇게 힘든데도 여러 외부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이제는 외유내강에 투자하면 손해 보는 일은 없다는 평판이 쌓였다. 투자 유혹을 거절하는 것은 자율성이나 창의성에서 제약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백조처럼 수면 아래에서는 열심히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웃음).

-그만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나.

△콘텐츠산업에 미래 먹거리가 있다. 다만 전통적 방식의 콘텐츠 중심 제작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시대의 흐름이 큰 숙제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을 보면 위협으로 다가오나, 기회라고 느끼나.

△OTT가 영화관을 대체한다는 점에서는 위협적이지만 협업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을 점프 도약대로 만들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넷플릭스로부터 협력 제안을 받았나.

△지난해부터 넷플릭스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그들만큼 우리도 신중하다.

-해외진출을 늘리는 기회가 되겠다.

△OTT의 장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알릴 수 있어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스플러스 등이 한국 시장에 공을 많이 들이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한국 시장은 창의성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며 유행에 민감하고 선도적이다. 아시아 시장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테스트마켓이다. 한국영화의 제작 수준은 세계 톱이라고 자부한다. 넷플릭스 등이 한국 시장을 주의 깊게 보는 이유다.

-창작자 관점에서 그들과 협업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나.

△넷플릭스가 3년 전 처음으로 한국에서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만들었는데 감독과 제작자에게 ‘완벽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설렘을 줘 화제가 됐다. 이후 ‘킹덤’ 시리즈로 한국 콘텐츠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킹덤 시즌2도 3월부터 방영될 예정이라는데 190여개국에서 12개 언어로 나간다고 하지 않나. 우리 드라마, 영화제작사, 콘텐츠 창작자에게 큰 사건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흥행성 있는 감독이나 자리 잡은 제작사에 먼저 기회를 주기는 한다. 물론 최근에는 신인에게도 투자의 보폭을 넓히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은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가 최근 서울 암사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개방형 혁신 플랫폼 구상을 털어놓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좀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해보자. 영화인으로서 AI·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화두는 무엇인가.

△저희를 포함해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어느 투자배급사와 손잡고 언제 개봉해 몇 개의 스크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고전적 방식에 머무르고 있다. 의외로 보수적이다. 당장 기획부터 예산 편성, 배우 선정, 촬영, 마케팅 등 단계별로 일하느라 다른 것에 눈 돌릴 여유가 없다. 하지만 세상이 급변하고 있지 않나. 영화라는 거대 공룡이 어떻게 혁신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플랫폼 없이 퀀텀 점프는 가능한가 등을 치열하게 고민하는데 통찰력 부족을 절감한다.

-영화계도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데.

△맞다. 기존에 잘하던 방식을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있다. 열심히 하는 것을 뛰어넘어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한다. 한국영화의 수준이 높아지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지 20년가량 돼 자본력을 제외하면 할리우드가 부럽지 않게 됐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공포감이 든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개방과 연결’인데 영화산업에서는 상상력이 잘 가동되지 않는다. 소스를 모두 오픈한 뒤 같이 먹거리를 창출해 나눠야 하지 않나 고민 중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겠나. 지키는 게 능사가 아니고 다 터주고 무한경쟁할 때 다음 단계로 점프할 수 있고 더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부딪히는 게 저작권을 비롯한 다양한 창작자들의 권리다. ‘이제 겨우 불법 다운로드를 뿌리 뽑아가는 중인데 이것을 오픈하라는 말이냐’는 자문도 한다. 아직 제 고민 수준이 어린아이 같아 부끄럽지만 ‘무엇을 개방하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새로운 미래수익을 창출하고 싶다.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려면 저작권도 공유 개념으로 가야 하지 않나.

△그게 복잡한 문제다. 어떤 플랫폼에서 가능할까가 관건이다.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나 볼 수 있는 세상에 유튜브가 대세라고 하지만 영화인이 유튜버는 아니지 않나. 머릿속에서 이렇게 조합하고 저렇게 융합하다가 때려치우고 다시 고민하고 있는데 시대변화에 걸맞은 혁신적인 실험을 해보고 싶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이나 과학기술 전문가와도 협업하면 좋겠다.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집단지성을 끌어내는 쪽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기존 영화산업의 많은 개념이 순식간에 달라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뜻한다. 초연결 시대에 맞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버거울 수밖에 없다. 정말 어려운 과제다. 올해 초 국회에서 통과된 데이터 3법이 상징하는 빅데이터 시대에 제작자로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퍼스트무버(first mover)는 외로운 법이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에도 신경을 많이 쓰면 좋겠다.

△항상 고민하는 이슈다. 입소문을 내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한번은 아이들이 ‘엄마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영화를 보게 할 생각은 안 해봤느냐’고 묻는데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정책 측면에서는 할 말이 없나.

△영화계의 수직 계열화나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을 의제로 삼는 분이 많은데 각자의 입장이 다양해 쉽게 언급하기 어렵다. 다만 장애인의 극장 접근성 개선 등 소외된 분들도 자유롭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데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She is…

1993년 고려대 가정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우연히 영화제작을 가르친다는 워크숍 포스터를 보고 참여했다가 당시 조교로 나왔던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부부로 연을 맺고도 처음에는 아내는 영화기획과 마케팅을 하고 남편은 영화감독으로 각자 일하다 2005년 외유내강이라는 제작사를 창업했다. 지난해 잇따라 내놓은 ‘사바하’ ‘엑시트’ ‘시동’이 호평을 받았으며 현재 ‘모가디슈’ ‘인질’을 찍느라 모로코 등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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