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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국책은행 주인 행세…官治 이어 勞治금융 우려"

[산은도 노조추천이사제 추진]

勞입김 세져 직무급제 도입 등 공공기관 개혁 발목

'핀테크 시대' 의사결정 지연으로 혁신 뒤처질 수도

금융당국은 "노사간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신중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노조원들이 지난 16일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 출근 저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기업은행 노사는 28일 노조추천이사제 적극 추진 등의 내용을 담은 노사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연합뉴스




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 등 대형 국책은행 노조가 연이어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하고 나선 것은 ‘친노동’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등에 업은 영향이 크다. 앞서 정부는 노조 입김이 거세진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공식화했다. 같은 해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금융사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검토를 권고한다’는 내용을 담아 금융권 전반에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금융권 최초 노조추천 사외이사 나올 가능성

민간 금융권에서는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가 2017년 11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추천한 이사를 선임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으나 이사 선임에는 실패했다. 이후 KB금융 노조가 두 차례 더 도전했지만 외국인 주주들의 우려 속에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에는 수출입은행 노조가 추천한 인사가 사외이사 후보에 포함됐으나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에 의해 무산된 사례도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업은행 노조가 윤종원 신임 행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인 끝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약속을 얻어내면서 금융권 최초의 노조추천 사외이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열린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취임한 산은 신임 노조 집행부가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하기로 방향을 설정한 것 역시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노조의 경영권 확대 분위기에 힘을 싣기 위한 노선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산은의 경우 사외이사 임기 만료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노조추천이사제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오는 3월28일 최방길 사외이사를 시작으로 양채열 사외이사가 5월25일, 김정식·김남준 사외이사가 각각 6월27일, 이윤 사외이사가 7월31일 임기가 만료된다. 반면 수은과 기은은 가장 빠른 사외이사 임기 만료 시점이 내년 2월이다.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산은과 기은은 주주총회를 거치는 시중은행과 달리 은행장이 사외이사를 제청하고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구조다. 일반 공기업은 기획재정부, 준(準)정부기관은 주무부처의 승인이 필요하다.

금융당국 “노사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우선”



다만 현시점에서 정부는 도입에 신중한 분위기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노조추천이사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금융권뿐 아니라 전 분야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가 진전이 안 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사안”이라며 “노사 간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이처럼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핀테크의 공습’ 등으로 다른 어떤 직종보다 빠른 경영 판단이 필요한 금융권에 노조추천이사제가 도입되면 의사결정 지연으로 혁신에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 함께 고용 안정성, 급여 등 처우가 일반 직장보다 좋은 금융 공기업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노조에 휘둘리게 되면 여론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노조의 경영개입은 기존 경영진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킬뿐더러 명예퇴직 위로금 확대 요구, 임금피크제 철회, 직무급제 반대 등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에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인이 없는 국책은행이 노동이사제를 시행하면 노조가 주인 행세를 하고 나설 것”이라며 “소비자가 아닌 조합원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관치(官治) 금융’ 대신 ‘노치(勞治) 금융’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조 경영권 개입 시도, 일반 공기업에도 확산할 듯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노조의 경영권 개입 시도는 다른 공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최대 공기업 중 하나인 한국전력 노사는 2018년 8월 ‘공사와 조합은 노동이사제 등 근로자의 경영참여 확대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문구를 담은 단체협약서를 체결한 바 있다. 같은 해 7월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공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목표로 근로참관제를 시행했다. 약 700조원 규모의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도 2018년 말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노사 협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의 노사합의서를 체결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노조추천이사제가 광범위하게 도입되면 노조의 과도한 경영개입으로 기관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협동주의 문화가 정착한 독일과는 상황이 다른 국내 공기업들이 노조추천이사제를 시행하면 경영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나윤석기자 이태규·조지원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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