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여울의 언어정담] 거절당하는 순간, 진정한 내 모습과 만나다

작가

자신과 더 투명한 만남 이끌어주는

거절 당하는 경험 꼭 나쁘지만 않아

현실 인정하고 자기만의 길을 갈때

누구도 빼앗아갈수 없는 '나' 발견

정여울 작가




살아가면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들 중 하나는 힘들게 노력한 결과물을 누구도 받아주지 않을 때가 아닐까. 작가에게는 오랫동안 공들여 쓴 글이 편집부로부터 거절당할 때가 가장 아픈 순간이다. 유명 작가들조차도 무명시절에는 거절의 아픔을 많이 겪는다. 세계적인 작가 스티븐 킹은 투고할 때마다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편지가 워낙 많아서 그 거절의 편지들만 모아 벽에 걸어 놓고 그것들을 노려보며 글을 썼다고 한다. 언젠가는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이 그의 무명시절을 버티게 한 힘이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만 헤세조차도 ‘어느 편집부에서 온 편지’라는 시에서 뼈아픈 거절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대하여 깊은 안타까움을 표합니다./귀하의 원고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그러나 본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음을/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출판사는 물론, 각종 신문, 잡지에서 헤세에게 이러한 거절의 편지를 거의 매일 보냈다고 한다. 헤세는 거절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자신의 진짜 고향은 없는 것 같은, 깊은 고립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깊은 고립감을 이겨내는 헤세의 비결이 매우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 목적 없이 오직 나만을 위한 시를 써서/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준다네/램프조차 내 시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겠지만/그럼에도 말없이 그 빛을 내게 보내주네./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램프에게라도 읽어줄 수 있다면 누구도 원치 않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글을 쓰고 싶다. 현실을 인정하고 흔들림 없이 자기만의 길을 걸어나갈 때, 우리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진짜 자신의 모습과 만날 수 있다. 나는 그럴 때 주로 혼자 낭독을 한다. 내가 쓴 글이 거절당했을 때, 여러 가지 ‘편집부의 사정’으로 작가님의 글을 실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더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거절당한 바로 그 글을 나 자신에게 조용히 들려준다.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경험은 꼭 나쁘지만은 않다. 내 자신과의 더 투명한 만남을 향해 나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발표되지 않아도, 많이 팔리지 않아도, 그저 내가 조금은 괜찮은 글을 썼다는, 나는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던졌다는 느낌이 밀려올 때쯤, 낭독을 멈추고 개작을 멈춘다. 나는 그렇게 더 나은 나 자신이 된다.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분노와 증오에 빠지지 않고 나를 구하는 방법 바로 이것이다. 더 깊이, 더 짙은 농도로, 나 자신이 되는 길. 거절당한 내 마음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드는 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내 안에서 찾는 것이다. 내가 내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내가 맡은 일의 과정 하나하나를 돌아보고, 내 부족함을 깨닫고, 더 풍요로운 나 자신과 만나는 길을 찾아가는 그 순간이 좋다.

돌이켜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거절당할 때마다 강해졌다. 거절당하는 모든 순간들은 결국 더욱 날카롭게 나를 벼리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 일로부터 거절당하고, 그 관계로부터 거부당했지만, 내가 아닌 전혀 다른 나를 만들어서, 그들이 원하는 나를 급조하여 재능이나 지위를 인정받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거절할 수 없는 나를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거절해도 진정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들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나를 만드는 것보다 그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켜야만 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좋다. 나는 아직도 사회생활에 서툴고, 관계맺기를 두려워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억지로 만들어서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까지 아껴주는 사람들과 더 깊은 공감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뭔가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주목받기보다는, 내가 평생 조금씩 뿌리내려온 내 사유의 토양 위에서 나를 더 튼실한 아름드리나무로 키워내고 싶다. 거절당해도 괜찮다. 거절은 사형선고가 아니다.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괜찮은 나,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나를 만나고 싶다. 거절당해도 무너지지 않는 나, 거부당해도 망가지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 마음의 눈부신 주인공이 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