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중동평화안’을 발표한 후 이를 주도한 ‘막후 3인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 데이비드 프리드먼과 미국의 중동평화협상 담당 특사였던 제이슨 그린블랫,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그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의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쿠슈너 고문은 3년 동안 중동평화안을 주도적으로 기획한 미국의 대(對) 중동 정책의 핵심인물로 꼽힌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인 쿠슈너 고문은 중동 인사들과 직접 접촉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서 ‘대화 통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가족끼리 교류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 그는 지난 2017년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임명될 당시에도 이미 주이스라엘 미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논의를 주도적으로 펼쳤다.
기획단계부터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 중동평화구상과 관련해 중동 사회의 지지를 직접 호소하고 다닌 인물도 쿠슈너 고문이다. 그는 지난해 5월 모로코·요르단 등 아랍동맹국을 방문하며 중동평화계획에 대한 지지 여부를 밝히지 않은 국가를 설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 중 쿠슈너 고문이 막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중동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반부터 외교 갈등의 ‘막판 해결사’로 자주 등장했다. 지난달 15일 백악관에서 열린 중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에 모습을 드러낸 쿠슈너 고문은 무역협상 과정에서 중국과의 대화채널을 구축했다. 특히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와 막판조율에 나서며 극적 타결 가능성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의 중심에도 쿠슈너 고문이 있었다. 2018년 6월 뉴욕타임스(NYT)는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지난해 싱가포르 주재 미국 사업가인 게이브리얼 슐츠에게 부탁해 쿠슈너와 막후채널을 구축했으며 이것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도움을 줬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무한신뢰’를 받고 있는 쿠슈너 고문은 출신·성장배경 등 장인과 통하는 구석이 많다. 뉴욕 유명 부동산개발 업자의 아들인 트럼프 대통령처럼 쿠슈너 고문도 뉴저지에서 손꼽히는 부동산개발 업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금수저’ 집안의 자제였던 쿠슈너 고문은 하버드대 입학 과정에서 “입학을 돈으로 샀다”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2004년 그는 아버지 찰스가 세금포탈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자 바로 회사 경영에 뛰어들었다. 25세였던 2006년 주간지 ‘뉴욕옵서버’를 1,000만달러에 인수하는가 하면 이듬해 뉴욕에서 가장 화려한 5번가에 있는 빌딩을 18억달러에 매입하기도 했다. 2008년 쿠슈너그룹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며 뉴욕·뉴저지·볼티모어 등에서 11만세대의 아파트시행건을 따내는 등 뛰어난 사업수완을 자랑했다.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쿠슈너 고문은 2009년 이방카와 결혼하면서 개인사업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그를 선임고문에 임명하며 ‘친족등용금지법’ 저촉과 이해충돌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후 실세’로 불리는 쿠슈너 고문과 관련된 논란은 지속됐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승리 직후 러시아 대사를 비롯한 요주의인물들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며 ‘러시아 스캔들’의 몸통으로 떠오르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각종 비판과 논란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쿠슈너 고문의 역할이 축소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데다 외부에서 그의 존재감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2016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 캠페인에서 디렉터로 일한 브래드 파스케일 역시 “백악관에서 쿠슈너보다 영향력이 강한 인물은 없다”며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2인자”라고 평가했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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