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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대담②, 요하 유역 고고학(요하문명)과 프랑스 사료(레지 사료)의 만남





<요하문명>과 고조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다. 작년 ‘아스달 연대기’와 같은 드라마가 제작된 것 역시 이런 대중적 관심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중심에는 국내 대표적 <요하문명> 연구자인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58)와 300년전 프랑스 레지 신부의 <레지 고조선 사료: RHROJ> 기록을 제대로 해제/사료교차검증/상호보완해 이슈화시킨 역사학자 유정희(동양고대사 전공, 38)가 있다. 2020년 2월을 맞이하여 때마침 이들의 대담이 성사 되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관련분야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다음은 이들의 ‘고조선 대담 총 4부작’ 중 2부이다.

◆ (고조선 대담①의 마지막 질문/답변에 이어서) 그렇다면 그런 문제점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유정희 : 나는 작년 7월 중순 출간한 나의 책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에서 한국고대사가 선천적으로 가진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였었다. 그것은 바로 ‘사료의 부재’라는 점이다. 사료가 너무 적다 보니 결국 기존 유명 선학(先學)의 연구성과가 연구 바로미터(기준)가 되는 구조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선학들이 이미 연구해 놓은 걸 큰 틀에서 바꾸면 선학들의 권위에 알게 모르게 손상이 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들이 꼭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결국 자꾸 곁다리, ‘가지치기’만 하든가, 이도 아니면 선학들 보다 더욱 수구적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선학들이 대부분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를 스승으로 두기에 다분히 알게 모르게 그들의 주장은 ‘반도사관’ 등의 한계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또한 설령 후학(後學)들이 혁신적으로 나가더라도 결국 많이 나가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실하 : 『환단고기』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재야사학과 강단사학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어왔다. 나는 『환단고기』를 사서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하문명에 대해 최초로 본격적으로 소개한 나의 책들을 반긴 사람들이 바로 재야사학자들과 일부 민족종교인 쪽이었다. 그들은 요하문명의 발견으로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대대적으로 반기고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구도 안 해본 주류학계에서는 요하문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을 ‘환빠’로 몰아가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재야사학계에서 열광하면 할수록, 주류학계에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필자로서는 정말 난감하고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 주류학계가 바로 그 꼴이다.

요하문명에 대한 연구는 (1)식민사학을 둘러싼 사학계의 갈등이나, (2)이른바 재야사학과 강단사학 사이의 갈등, (3)민족주의사학이나 실증주의사학 등등의 문제와도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묻혀 있다가 새롭게 드러난 요하문명이 우리의 상고사-고대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학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중국학계에서는 요하문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그들의 상고사를 완전히 재편하고 있는데, 이 지역이 고조선의 강역/영향권/문화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는 것은 한국학계의 직무유기일 뿐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 <요하문명>이나 <레지 사료>에 대해 추후 고조선 관련 역사학계에서는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유정희 : 재작년 내가 다른 신문사 인터뷰에서도(데일리그리드, 2018. 11. 6. -역사학자 유정희, 해방 이후 최대 역사논쟁인 ‘고조선 논쟁’ 종지부 찍나?- 참고) 이미 말했듯이 <레지 사료>를 ‘인식사(어느 시점에서 만들어진 허구이자 기억의 역사)’로 정리 할 것 같다. 이를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게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300년전 그때 그런 얘기 이미 많았다. 레지 신부가 당시 잘못 보고 잘못 적은 것이다.” 등등이다.

가령 내가 재작년 인터넷 검색 하다 발견한 아마 사학과 여학생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쓴 글 중 이런 글이 있더라. 이 <레지 사료>에 대해 적은 글이었는데, 이를 이렇게 설명했더라. 뭐냐하면, 고려말부터 당시 그런 얘기 이미 많았고, 사실 단군신화 등도 알고 보면, 고려말 고려임금(환웅)과 상국(上國)인 원(元)나라 공주(곰)의 혼인과 결혼생활 중 거친 원나라 공주를 길들이기 위한 방편이나 희망으로 그리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 아마 그 학생은 본인의 생각이기 보다는 자기 교수가 한 얘기를 적어 놓은 것 같았는데, 내가 듣기에도 아주 재밌는 비유이자 흥미로운 얘기였다. 근데 내가 여기서 하나 되묻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그런 증거가 어딨냐?”는 것이다! 사학과 석박사 대학원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고대사(古代史)에 있어서 무슨 추측이나 상상을 하면 교수가 곧잘 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그런 증거 있나? 자네는 소설 좀 쓰지 말라!”고 한다. 어찌 보면 역으로 이게 꼭 그 꼴이다. 다시 한 번 되묻는다. 당시 그런 얘기 많았고, 레지가 잘못보고 잘못 썼다는 증거, 단군신화가 고려임금에게 시집온 상국인 원나라 거친 공주 길들이기 위한 희망이나 바람의 표현이었다 등등의 이야기들, 도대체 이게 그거라는 그런 증거가 어디 있냐?



우실하 : 요하문명 지역에서 발견된 고고학 자료들은 모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Fact)’이다. 고고학 자료는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서 기록된 ‘사료’와는 달리 처음부터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물론 발견된 유물에 대한 해석을 달리할 수는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요하문명 지역의 고고학적 자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레지 신부의 자료, 곧 <레지 사료>는 환단고기 류의 책들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한국 상고사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레지 신부의 기록이 새롭게 드러난 요하문명의 고고학적 자료와 만나면 새롭게 조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그래야만 한다.

◆ 고조선 관련 역사학계는 왜 고조선에 대해 항상 작게만 보려고 하는가?

우실하 : 나는 크게 두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고조선은 신화이고, 만주일대나 한반도에서 기원전 2300년경에 국가 단계에 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이다.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이후 요하문명이 새롭게 발견되기 전까지 요동-요서를 포함한 만주일대는 ‘야만인의 땅(?)’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변변한 고대 문명의 흔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은 요하문명의 발견으로 여지없이 깨졌다. 이제는 요하문명을 바탕으로 새롭게 상고사를 재해석해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유정희 : 음.... 내가 본래 전공한 동양 고대사만 하더라도 사료가 그렇게 적지는 않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이 많고 다양한 연구가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너무 적다. 특히 고조선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아무튼 그래서, 반복하지만 한국 고대사는 기존 선학이 해놓은 연구가 기준(바로미터)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를 크게 뒤틀 경우 선학의 권위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더욱 수구적으로 나가든지, 아니면 큰 틀에서 그대로 두고 가지치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문제는 기존 윗대 선학들의 연구가 일제하의 일본인 스승 등의 영향으로 알고 보면 ‘반도사관’ 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고조선에 대해서는 항상 작게만 보는 게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니 대중은 학계를 못마땅해 하고 둘이서 큰 괴리가 알게 모르게 생긴 것 같다. 문제는 가뜩이나 우리 고대사를 자꾸 작게만 봐서 학계에 불만인 대중이 언제까지 이를 그대로 묵과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프랑스어 원문 <레지 사료>를 ‘사료 선점’ 측면에서 어떻게 볼 수 있나?

유정희 : 사료가 극도로 부족한 고조선학(古朝鮮學)에서 일단 이 정도 완전 공개된 기록이라면 해방 이후 지난 70년간 이에 대한 논문 최소 1백편은 이미 나왔어야 한다. 어찌보면 <레지 사료>가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사료 비판’을 장대하게 했어야 했다. 가령 단군신화가 실린 <삼국유사>에 대한 사료 비판은 얼마나 많은가. 관련 조금이라도 언급된 논문이 아마 천편은 넘을 것이다. 그러나 학계는 <레지 사료>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사료 비판’ 논문이 사실상 하나도 없었다. 이유는 내가 다른 칼럼 등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일간스포츠 2019. 11. 4 -어느 미국인 학자의 혜안과 한국 고대사학계- 참고), 첫째는 일부 주류 고조선 관련 역사학계가 프랑스어나 영어 등 서구어에 서툴러서이고, 둘째는 중국 고대 하상주(夏商周) 배경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고대사 관련 연구자들은 매우 부지런한 편이다. 나도 과거 옆에서 오래 지켜봤지만, 사료에 비해 연구자들은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연구서나 논문이 매일 쏟아진다. 신기한 건 그들은 연구서나 논문이 나오는 족족 바로 읽어보고 바로 파악한다. 당시 나도 놀랄 정도였는데 우리 같은 동양사 전공자는 연구서나 논문이 나와도 한참 뒤에나 찾아보는 경우가 많은데, 대조적으로 그들을 보면 마치 잘 훈련된 군대나 빈틈없는 톱니바퀴 같았다. 어찌보면 역으로 이게 <레지 사료> 사료 선점을 놓친 원인일 것이다. 애초 사료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미 사료는 다 알고 있으니, 연구서나 논문 등만 빨리 파악하는 것에 최적화 된 것이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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