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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추사가 쓴 러브레터로 조선시대 읽기

■정창권 지음, 돌베개 펴냄





‘저번 가는 길에 보낸 편지는 보아 계시옵니까?/그 사이에 인편이 있었으나 편지를 못 보오니,/부끄러워 답장을 아니하여 계시옵니까?/나는 마음이 매우 섭섭하옵니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33살이던 1818년 2월11일 아내 예안이씨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의 일부다. 당시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은 경상 감사로 부임하면서 아들 추사 등과 함께 대구로 낙향했다. 서울에서 시어머니 기계유씨와 함께 집안 대소사를 책임지던 그의 아내는 남편과 생이별해야만 했다. 추사는 편지에서 답장이 오지 않는 아내에게 안부를 전하며 서운한 마음까지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수없이 오갔을 부부의 편지 중 추사의 애처가다운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신간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는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와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다. 추사를 중심으로 선후 5대가 주고 받은 85통의 편지를 통해 추사 개인의 집안사뿐만 아니라 조선의 가족사와 여성사까지 복원했다.

편지가 전달되던 18~19세기의 조선은 완고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조선시대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출가외인(出嫁外人)과 같은 인식이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모든 남성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추사 집안의 편지 곳곳에서 드러난다.



편지에 따르면 당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집안일에 참여했다. 여성들이 의식주 등 안살림을 주관했다면 남성들은 가문관리, 아내와 며느리, 아들, 손주 등 가족 돌보기, 의복과 음식 등 살림살이 관리, 제사나 혼인 등 집안 행사 주관 등 많은 부분에 참여했다. 일례로 유배 중이던 김노경은 ‘둘째 아들의 생일에 만두를 빚었는데, 메밀가루와 김치가 없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메밀국수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 다음에 도전해보겠다’는 대목도 나온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노경은 의금부를 총괄하는 관직인 판의금부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

저자는 “조선 후기는 완고한 주자성리학의 자장 속에서 가부장제가 정착되어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로 엄격하게 분리된 사회라고 단순하게 인식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가부장제가 정착된 사회라 해도 남성은 늘 집안일에 신경 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추사 집안의 편지를 통해 당시 남성은 그저 집안의 대표자에 불과했지 결코 가부장적인 권력의 향유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글 편지의 현대어 번역은 원문을 최대한 지키며 직역을 위주로 이뤄졌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토리텔링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1만7,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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