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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시동'의 스타트, '이태원 클라쓰'의 바통터치

사진=‘이태원 클라쓰’ 홈페이지




중학생 시절, 친구가 학교 뒷산에서 담배를 피우다 학생주임 선생님께 걸려서 빈 교실에 갇힌 채 하루 종일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이 친구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몇 년 뒤 서울의 한 대학 체대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소식은 끊어졌지만, 아주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시동’의 고택일은 그와 많이 닮았다. 눈을 떴으니 그냥 하루를 사는 ‘앞 못 보는 청춘’에게 세상은 재미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으리라. 모든 엄마가 그렇듯 엄마는 맨날 기계처럼 똑같은 잔소리만 하는 사람이고.

웃기지 않아 집 밖으로 나온 세상은 생각보다 더 웃겼다. 돈 만원 들고 찾은 외딴곳(만화 원주, 영화 군산)에, 보이길래 들어간 중국집에서 배달 일까지 하게 되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 조폭인데 웍을 들고 있는 거석이형, 힘없어 보이는 공사장, 보기만 하면 때리는 소경주,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배구만까지….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사람들만 만났다.

거석이형에게 얻어맞는건 그렇다 치고, 택일은 그들 안에서 먹고 자면서 서서히 짜증을 줄여갔다. 같은 곳에서 수저를 기울이고 있으나 마주앉은 모두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는 조금씩 엄마를 떠올리게 됐다.

휴가를 받아 제자리로 돌아온 택일의 세상은 더 감당하기 어려웠다. 엄마의 무허가 토스트 가게가 철거될 위기에서, 일수업자들의 훼방 앞에서 그는 거석이형에게 딱 한번만 도와달라 부탁하지만 이런 답을 받는다. “똥 눴으면 니가 닦아.” 소중한건 네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그는 소경주의 복수 아닌 복수를 지켜봐주며 본인도 스스로 뭔가를 이루려고 처음으로 마음먹는다.

영화 ‘시동’ 스틸컷


이 시점은 ‘이태원 클라쓰’의 출발선과 만난다. ‘시동’은 미숙한 청춘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았다면, ‘이태원 클라쓰’는 이를 통해 신념을 가진 청춘의 성공담을 그린다. 억울한 퇴학과 더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 15년간의 복수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이뤄가는 과정은 통쾌하고 짜릿하다. 마치 내가 단밤(만화에선 꿀밤)의 일원이 된 듯.

물론 박새로이의 탄탄한 소신은 가게를 열자마자 가로막힌다. 장사가 돼야지…. 여기서 운명처럼 조이서가 나타나고, 어른들의 세계를 능수능란하게 쥐락펴락하는 그의 도움으로 단밤은 성공을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질주한다.



단밤에 모인 이들 모두 사회에선 부적응자라 부른다. 전과자(박새로이), 건달(최승권), 트랜스젠더(마현이), 소시오패스(조이서), 드라마에 추가된 혼혈(김토니)까지. 이들의 사연이 하나씩 공개될수록 접점을 찾을 수 없던 마찰은 ‘불타오르자’는 열기를 만들어낸다. 사장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서로에 대한 믿음이 되고, 이는 단밤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거대하게만 보였던 장가에 눈 하나 꿈뻑하지 않게 된다.

‘이태원 클라쓰’와 ‘시동’은 부족하거나 어느 한 곳이 비어있는 이들이 그 사이를 메워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잘 할 수 있다’, ‘괜찮다’는 꿀 빠진 호떡 팥 빠진 호빵같은 쓰잘데기 없는 위로나 관심보다 때로는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그런 신뢰가 사람을 성장시키고 앞으로 보고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믿게 만든다. 소신의 대가가 없는 그런 삶, 진짜 그런 삶.

언젠가 다 큰 택일이와 정점에 오른 박새로이가 소주 한잔 마주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흐뭇할까. 그때 그 술 한잔은 달디 달겠지. 그날은 분명 인상적이었을 테니까.

사진=‘이태원 클라쓰’ 홈페이지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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