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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코로나19에 소멸 중인 '中 신뢰자본'

최수문 베이징특파원





중국 베이징시는 최근 약국에서 해열제 등 감기약을 구입할 때 실명을 등록하도록 의무화했다. 약을 먹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발열을 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지 지인에게 ‘증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대답이 기막히다. “어차피 치료도 잘 못하는데 공안 같은 기관에서 오라 가라 귀찮게만 한다”는 것이다.

14억 인구인 중국에서 후베이성 이외 지역의 최근 하루 확진자 수는 10명 미만이다. 일단 중국 정부 공식 통계상으로는 그렇다. 그럼에도 베이징 시내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여전히 없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다른 현지인은 “우리도 통계를 안 믿는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정부도 자기 국민을 못 믿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전쟁에서 승리 중”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식당 영업을 방해하며 도로를 막는가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체온계를 들이대고 있다.

기자가 중국을 공부하며 처음 들은 말 중 하나는 ‘중국인을 상대할 때 한국인처럼 하지 말라’였다. 중국인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뢰의 부족’은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민족인 만주족에게 무려 268년을 지배당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중국인으로서는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지 해야 했을 테다.

여전히 ‘독재’ 치하에서 민주주의를 겪지 못한 중국인에게 ‘나부터 살겠다’는 정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국가는 통제와 관리만 생각하고 국민들은 정부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사익 챙기기에 몰두하는 식이다.

중국 정부의 강압은 해외 국가나 국민에게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격리와 차별 등의 문제는 그런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달 25일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시작된 한국인 강제격리가 이미 중국 전체로 확대됐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선의나 예의도 없는 행동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한국이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에도 불구하고 입국 중국인에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현지인들도 인정한다. 막대한 의료물자도 제공했다. 코로나19는 중국이 만든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인의 입국을 규제하면서 사전협의 우선이라는 국제 관례마저 지키지 않았다. 적반하장이나 배은망덕이라는 지적도 당연하다.

중국은 자국에서 한창 환자가 속출할 때 미국이 ‘과학적 대응’이라면서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데 대해 ‘과잉 대응’이라며 반발했다. 그랬던 국가가 한국에 대해서 ‘과학적 대응’이라며 차별하는 상황이다.

중앙과 지방 정부 간의 떠넘기기도 다반사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인에 대한 인위적인 규제는 없다면서도 실제 상황은 지방정부 일이라는 발뺌으로 일관한다. 지방에서도 성·시 등 행정 단위마다 말이 다르다. 과거 사드 보복 식 행태가 다시 나타났다고 현지 교민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신뢰는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인프라와 같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뢰는 자본처럼 일단 모이면 더 많이 모을 수 있고 활용도도 높아진다. ‘신뢰 자본’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신뢰 자본은 소멸하는 중이다.

한국으로서는 가장 가까이 접해 있는 중국을 막연히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원가가 저렴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우리 산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사드 보복에서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무역전쟁·코로나19까지 중국발 쓰나미가 잇따랐다. 한국 자체의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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